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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ujin May 13. 2024

서아 #4 도리깨, 부르지 못할 이름

어느새 이렇게 자랐나? 겨우내 메말랐던 땅에 잡초들이 무성하다. 이제 더는 미뤄 둘 수 없어 손에 호미 한 자루를 들고 옥상 텃밭에 풀썩 자리 잡고 앉아본다. 명아주, 달개비, 강아지풀, 도깨비풀, 쇠비름.. 서너 평 되는 작은 텃밭에 여러 녀석들이 허락도 없이 세를 확장 중이다. 누군가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지만 내가 이름 백번을 불러주어도 절대 꽃이 되지 않을 녀석들이다. 하물며 이름도 모르는 녀석까지 어디선가 날아와서 많이도 싹을 틔웠다.

 해가 바뀜에 따라 텃밭에 나는 잡초들도 다양하다. 어느 해엔 악마의 나팔이 텃밭 한가운데를 점령해 기겁하게 하더니, 올해는 유난히 달개비들이 많다. 달개비는 그나마 뽑기에 수월해서 다행이다. 도리깨라는 잡초는 바닥에 딱 달라붙어 개체수를 마구 늘리고 잘 뽑히지도 않아 한참 애를 먹게 한다. 도리깨, 이 녀석이다. 이름도 모를 녀석이 어찌나 애를 먹이는지 스마트렌즈로 찍어서 이름을 확인했다. 세상 참 좋다. 모르는 건 언제든 찍어보기만 하면 이름까지 다 알려주는 세상이다. 도리깨라는 이름을 확인하고선 다짐한다. 절대 그 이름 불러주지 않겠노라고.

 잡초를 쉽게 제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보이는 즉시 뽑아버릴 것. 쉬운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잡초를 즉시 뽑아버리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태생적인 나태함, 매사 너무 긍정적인 안일함, 그리고 이게 풀인지 뿌려둔 씨앗의 싹인지 모르는 무지함 때문이다. 마음에 싹을 틔우는 상념도 마찬가지다. 떡잎이 보일 때,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하는데 나태함으로 미루고, 별일 아닐 거란 마음으로 미루고, 혹 나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으로 미뤄둔다. 어리석게도.

 잡초는 종류에 따라 제거하는 방법도 각각 다르단다. 그냥 막 뽑아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데, 서너 평 텃밭에 고추, 상추, 허브 몇 개  대충 심어둔 엉터리 농사꾼이라 거기까지엔 관심이 없다. 굳이 제초제를 뿌릴 규모도 아니요, 속내를 터놓자면 한 뼘 되는 내 텃밭에 잡초 몇 개는 그냥 놓아기르자는 마음도 한 켠에 있다. 보기에 어여쁘지 않다고, 내게 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내가 기르는 작물을 해한다는 이유로 잡초를 뽑아내는 행위가 가끔은 죄스럽기도 하다.


잡초 하나를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고 생각들만 또 무성해진다.  나는 잡초만큼 처절하게 살아보았는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긴 비행을 거쳐 마침내 착륙한 땅에서 새에게 쪼아 먹히지도 않고 용케 살아남아, 싹을 틔우고, 나를 위해 준비된 물 한 모금 허락되지 않는 홀대를 견디며 있는 힘을 다해 뿌리를 뻗어 살아남으려 애써 본 적이 있는가. 어휴, 그들의 서사를 짐작하면 잡초를 뽑아내는 내 손이 미안함에 움찍 움찔하다. 그래서 나는 징글징글 밉지만 먹먹하게 숭고한 그 이름을 차마 부르지 못한다. 도리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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