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에 감사원장을 지낸 전직 판사가 감사원장을 그만두고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고군분투 중이다. 준비가 아직 덜 됐다고 자기 스스로 고백도 해서 준비 부족이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감사원장까지 한 사람치고 인식이 저 수준밖에 안 되나 싶어 한마디 하고자 한다.
학생운동이 있었던 199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으로서 선배들한테 무수하게 들은 말 중의 하나가 “내가 너의 삶을 책임져 줄게”였다. 당시 데모에 나가면 수업도 빠져야 하고 그러다 보면 학점이 나쁘게 되니 좋은 직장을 얻기도 힘들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선배가 취직을 시켜준다는 건가? 아니면 학점을 잘 받게 해준다는 건가?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차츰 세월이 지나 내가 선배가 되고 보니 후배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더이다. 그러면서 그 의미를 내심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책임(responsible, 責任) 영어의 어원은 responsum(대답, 응답)과 spondere(약속하다) 두 단어가 결합하여 만든 단어라 한다. 약속에 대한 응답이 책임이라는 것이 서양적 관점이다. 약속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것 중에 선택하는 것으로 자신의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즉 약속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참여와 세계에 대하여 나의 선택에 의한 참여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약속의 중요한 개념은 선택이다. 그것도 본인의 의지로 하는 선택이다.
동양적 관점은 한자를 보면 책(責)의 의미는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말하고 임(任)은 베를 짜는 사람의 의미가 있다. 당시 베를 짠다는 것은 한 사람이 도맡아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러니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베를 짜는 것처럼 어려운 선택에 의한 한 사람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책임은 모두 풍족하고 여유로운 상태에서 임하는(베를 짜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서 임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두 관점을 합하면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서 선택한 약속에 응답하거나 임하는 것이 책임이다.
그럼 책임의 대가는 있는가?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다. 실존, 즉 존재가 본질보다 앞선 개념으로 숟가락의 본질은 밥을 먹기 위한 도구이고 그 본질은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약속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람은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본질보다 우선하며 인간 스스로 본질을 만들어 가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절대적인 자유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 간에 선택의 자유가 있고 그와 동시에 그 자유를 행사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한 것이 이런 취지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의 자유가 있고 그 자유를 행할 의무가 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자유와 책임은 상호 보완적 개념이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는 의미가 없고, 자유가 없는 책임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책임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자유가 따라붙는다. 앞서 얘기한 대학 시절 선배의 “내가 너의 삶을 책임져 줄게”라는 것은 “내가 너의 삶의 자유를 줄게”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선배는 나에게 ‘자유’라는 의미를 가르쳐 준 것으로 생각한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국가의 역할까지 논쟁을 확대하지 않아도 개인 삶의 책임은 개인이 의지에 의한 선택이 항상 자유롭게 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교육 수준의 차이로 개인의 선택이 침해되거나 방해가 된다면 그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보장하는 것 그것이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는 의미이다. 국가는 개인의 주거 자유를 최대한 지켜낼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고 만들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더욱 확대하고 보장하는 것이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민의 삶을 국민 개인이 책임져야 하지 국가가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 그것이 공산주의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정말 무식한 얘기이다.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인 개인의 자유가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선택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어찌 공산주의 빨갱이라 할 수 있는가? 마치 모든 것을 국가가 해주는 것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찌 새로운 개념이 들어갈 공간이 있겠는가? 막스가 주장한 사회주의 국가는 이미 30년 전에 사라졌다. 아직도 빨갱이 운운하며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옛날 생각이고 옛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