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하고 나하고는 의사소통이 안돼

by 치킨만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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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허가 총량제’에 대한 발언이 나온 후 ‘공산주의’, ‘망언 총량제’ 등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들을 보면서 나는 ‘과연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차분히 앉아서 토론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거나 더 좋은 생각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우리에게 사치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분노케 하는가? 그 분노로 인해 마주 앉아 서로의 생각을 차분히 듣지도 못하는가?라고 질문을 해본다.


온라인 수업에 학생 한 명이 질문 게시판을 통해 질문하였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즘 백신 부작용에 대해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백신을 맞는 것이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요. 부모님 세대는 생각이 다르신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기성세대와의 갈등은 기성세대는 옳다/그르다고 판단하고 젊은 세대는 이를 선택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요. 백신도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백신을 맞는 것이 트롤리 딜레마와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열차 안에 있는 다수는 백신 부작용이 없는 사람들이고 선로에 있는 소수의 사람을 백신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와 친구 아버님의 의견을 여쭤보니 공동체의 안위를 고민하시고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작아서 백신을 맞지 않는 것을 이기적인 행동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백신 접종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참으로 당황했다. 광고 관련 수업에 백신에 논쟁에 대한 질문을 받다니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솔직히 몰랐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답을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가 솔직히 어려웠다. 그래도 답을 찾아야 했기에 고민해서 다음과 같은 답을 어렵게 만들어 게시했다.


철학적 질문이네요. 철학과 교수님들이 답을 해주시면 매우 좋을 듯하지만…. 우리 학교에는 철학과가 없긴 하네요. 일단, 백신 접종 문제는 개인 결정으로 국가가 강제할 수 없다는 논쟁인 것 같군요. 이 논쟁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 제시방법이 있겠지만 전 우리 전공과 관련된 이론을 가지고 접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이라는 이론을 접한 적이 있는지요? 한번 정독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사람의 주요 논지는 의사소통은 서로가 동의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 간의 소통이라는 것은 대화 내용이 상대방이 수용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학생들에게 '다음 주 수업은 휴강입니다'라고 고지를 한다면 학생 관점에서 보면 휴강이라는 것을 수용한다면 휴강에 대해 기뻐할 것이고 수용하지 않는다면 휴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것이라 봅니다. 여기에서 불만 토로를 직접 하는 것은 받아들일 가능성이 기대되기 때문에 불만을 토로할 수 있죠. 그런데 애초에 그런 불만을 토로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고 예측이 된다면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상호 관련성이 커뮤니케이션 유지에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입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접근을 하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개인 즉, 주체인데 주체의 결정은 다른 주체와의 상호작용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개인 주체이고 주체와 세상이라는 구도를 통해 주체의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보았으나 그 세상이라는 것이 또 다른 주체라는 것이 하버마스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백신을 맞지 않겠다면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다른 주체(객체)들이 동의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들이 수용할 수 있을 때 백신을 맞지 않아도 된다는 본인 주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상호 간의 상호작용으로 유지가 된다면 아마도 상대방이 수용 가능한 전략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답이 될까요


이렇게 답을 달고 학생이 잘 이해하길 바랬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는 지금 발전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하버마스는 정상적인 사회라면 상호 간 의사소통 행위로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 가고 이를 통해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지금 우리는 의사소통 행위를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사회가 합리적 대안을 찾고 전진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무슨 분노가 그리 많은지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척결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지속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넘쳐나는 정보로 인해 사람들은 오히려 정리된 단어 문장만을 보게 되고 이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효율적 사고체계에 익숙해져 있는 것도 그 원인 중에 하나다. 넘쳐나는 정보가 사람이 사고를 오히려 닫아버리게 하니 역설적으로 진득하니 시간을 투자해 서로의 주장을 찬찬히 음미해보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점점 3줄 이상 넘어가는 글자를 읽기가 어렵고, 글자보다는 영상이 편하며 그 영상은 될 수 있는 대로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 우리의 사고체계를 오히려 단순하게 하는 것이 생각된다.

그러니 대안을 갖고 길게 설명하여 남을 설득하기보다는 짧은 단어나 문장으로 선동적 언어도 뱉어낸다.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짧은 단어로 만든 문장에 ‘다음’ 또는 ‘대안’을 만들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다음 세대', '대안', '미래'등에 대한 방향 제시와 구체적인 제안이 필요하다. 의사소통을 정말 해야 한다. 마주 앉아 차분히 얘기해야 한다. 우리도 우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화성에 누가 갈지 얘기하고 싶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행동과 실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지금 이런 대화들을 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하면 할 수 있겠는가?


학생이 답글을 남겼다.

' 답변 감사합니다. 다른 주체(객체)들이 동의, 상대방이 수용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데 저는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읽어보고 소통의 관점에서 다시 고민해보겠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대학 수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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