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뛰드_오버 글로이 틴트 23 colors_03 프레시 애플
(구매일: 2025년 8월 29일)
색조 화장품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색조 화장품이 많지도 않다. 생각난 김에 세어보니 파운데이션 2개, 쿠션 1개, 아이섀도 팔레트 2개, 블러셔 3개, 아이브로우 2개, 틴트 5개, 컬러 립밤 2개, 마스카라 2개이다. 아마 대한민국 여성들이 보유한 색조 화장품 개수보다는 적지 않을까?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면서도 매일 쏟아지는 상품에 물욕을 줄이지 못하지만, 색조 화장품만큼은 물욕을 절제할 수 있다.
색조 화장품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유는 여드름 피부로 장기간 살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된 여드름은 삼십 대 중반까지도 없어지지 않았었다. 여드름 때문에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 보고, 한약도 먹어 보고, 피부과에서 바르는 약도 발라보고, 먹는 약도 먹어봤는데 여드름 피부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화장이 잘 먹는 피부가 아니었기에 색조 화장품은 불필요한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현재는 화장이 잘 먹는 피부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워낙 긴 시간을 메이크업과 동떨어져 살았더니 색조 화장품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똥손이 되어버린 탓에 여전히 색조 화장품과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없으면 안 되는 색조 화장품이 생겼다. 바로 빨간색 틴트다. 나는 얼굴에 파운데이션이나 쿠션은 안 바르고 외출할 수는 있어도 입술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상태로는 외출이 꺼려진다. 맨 입술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내가 아픈 줄 아는데, 확실히 내가 내 얼굴을 봐도 아파 보이기 때문이다.
일하러 갈 때는 사회적 매너를 위해서 화장을 한다. 그런데 예전에 늦잠 때문에 민낯으로 출근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집에서 화장할 시간이 단 오 분도 없었고,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화장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고, 오로지 지각에 대한 걱정만 있었다. 다행히 달리고 달려 지각은 면했는데 대신 그날은 나의 맨얼굴이 일터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날이 되었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인 얼굴로 업무를 보고 있는데 남자 동료분이 나에게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며 말을 건네셨다. 늦잠을 잤을 정도로 푹 자고 온 나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건 이상한 일이고, 아무래도 나의 민낯이 괜찮지 않은 것 같았다. 지각의 고비를 넘기자, 맨얼굴의 고비가 찾아온 거다. 여성 동료분이라면 나를 보자마자 민낯이란 걸 알았을 텐데, 남성 동료분이라 평소와는 다르게 어두워진 나의 피부톤을 보고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분의 따스한 걱정에 실망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는데도 피곤해서 그런 거라는 거짓말을 했다.
아무래도 틴트라도 입술에 바르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가방에서 핑크색 틴트를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리 틴트를 발라도 거울 속의 나는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 아프다고 말해야 할 것만 같은 상태로 보였다. 화장한 상태에서는 바르면 은은한 핑크빛이 입술 위에 올려지는 색이었는데, 민낯 상태에서는 바르나 마나 한 색이었다. 젊었을 때는 핑크색 틴트만 발라도 얼굴이 화사해졌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핑크색 틴트를 발라도 얼굴이 칙칙해 보였다. 그래서 민낯에 발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색상의 틴트를 이것저것 찾아 보니 빨간색색뿐이었다.
어렸을 때는 스타일이 과감한 여성들만 빨간색 립 제품을 바르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 이미지로부터 먼 거리에 있던 나는 빨간색 립 제품을 바를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빨간색 틴트를 발라보니 예나 지금이나 과감한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잘 어울렸다. 젊었을 때는 입술에 조금만 진한 색을 발라도 주변에서 쥐를 잡아먹은 거 아니냐, 입술에 고추장 바른 거 아니냐고 놀리고는 했는데, 지금은 내가 입술을 빨갛게 바르고 있으면 주변에서 잘 어울린다고 얘기해 줘서 나 혼자 빨간색 틴트가 스스로에게 잘 어울린다고 착각하는 게 아님을 확인받고는 한다.
무엇보다 빨간색 틴트의 가장 큰 장점은 풀메이크업이 아닌 상태에서 발라도 얼굴에 형광등을 켜주는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거다. 그리하여 나는 민낯 자신감이 없는데도 이런 빨간색 틴트의 효과로 최소한의 민낯 자신감을 지켜내고 있다. 안색 개선을 위해 미백 효과가 있는 화장품도 사용해 봤지만, 나의 안색 개선을 가장 빠르게 해결해 주는 건 현재로서는 빨간색 틴트뿐이다. 그래서 ‘에뛰드’ 브랜드의 <오버 글로이 틴트>도 프레시 애플색으로 구매했다. 형광기가 있는 쨍한 빨간색이라 올리브영에서 테스트를 할 때 '너무 과한가?' 싶긴 했는데, 확실히 집에 와서 발라보니 이 정도는 발라줘야 얼굴에 생기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 앞으로 빨간색 틴트만큼은 놓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