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 유희_감자밭 손수건
(구매일: 2025년 7월 10일)
여행을 떠나면 여행 자체가 기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념품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빈손 귀가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기념품을 사는 경우라면 여행하는 동안 있었던 이야기가 깃들만한 물건이라던가,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게 아닌 특정 가게에서만 살 수 있는 자체 제작 상품에는 욕심을 낸다.
강릉 여행을 갔다가 ‘유리알 유희’라는 소품샵에서 자체 제작했다는 <감자밭 손수건>을 기념품으로 샀다. 손수건에 그려진 감자 캐릭터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귀엽기도 했고(특히 머리에 싹이 난 감자가 귀엽다), 무엇보다 감자를 테마로 만들었다는 게 구매 포인트였다. 왜냐하면 이번 강릉 여행에서 내 입맛에 맞는 감자전과 감자옹심이를 파는 식당을 방문했는데, 강릉 출신인 감자 캐릭터를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았다.
검색창에 ‘강릉 맛집’을 입력하면 초당순두부, 오징어순대, 닭강정, 순두부 젤라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음식이 소개된다. 관광지까지 왔으니 한번은 먹어 봐도 괜찮은 음식들이지만, 내 입맛 기준으로는 재방문해서 먹고 싶을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재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냈는데 ‘감자적 1번지’라는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감자옹심이다.
내 입맛은 재료 본연의 맛이 나는 건강한 음식을 선호한다. 내가 맛있다고 평가하는 음식은 다른 사람의 입맛에는 싱겁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의 사람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음식은 내 입맛에는 너무 짜거나, 너무 맵거나, 너무 느끼하거나, 너무 달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싱겁다고 하는 병원 밥과 구내식당 밥을 불만 없이 먹는다. 어렸을 때부터 저염식을 선호하는 우리 엄마표 요리를 먹고 자랐더니, 보통 사람들의 입맛과는 다른 미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맛집을 검색할 때는 ‘건강한 맛입니다’라는 후기가 있는 식당을 방문해야 내 입맛에 맞을 확률이 높다. ‘감자적 1번지’는 이런 이유로 찾아낸 식당이었다.
숙소에서부터 ‘감자적 1번지’ 식당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했다. 택시로 타면 목적지까지 10분이 걸렸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시티버스(*안목 커피 거리부터 주문진까지 해안가를 운행하는 버스)를 9분 정도 타고 23분을 걸어야 했다. 택시를 타고 편하게 가는 방법도 좋지만, 바다를 보며 갈 수 있는 시티버스를 타고 싶어서 버스와 보도를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시티버스 시간에 맞춰 숙소 근처에 있는 시티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런데 시간표 시간에 가까워져도, 시간표 시간이 지나가 버려도 시티버스가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정류장에 서 있던 시간보다 더 일찍 시티버스가 출발해 버린 것 같았다. 초반부터 계획에 차질이 생겨 당황스러웠지만, 한 시간에 한 대인 시티버스를 기다릴 수는 없어 최대한 일찍 갈 수 있는 일반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렇게 서둘러 일반버스정류장으로 장소를 옮겨서 ‘안목커피거리 정류장’에 가는 버스를 탔다. 해안을 따라 달리는 버스는 아니었지만 한적한 논밭을 따라 달리는 버스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안목커피거리 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하차한 버스정류장으로부터 23분을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정보와는 다르게,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목적지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초행길에다 그늘이 없는 땡볕 아래를 걷다 보니 23분으로는 부족했다. 길어지는 소요 시간과 출발 전보다 어두워진 피부색에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를 탈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그래도 걷고 걷고 걷다 보니 목적지에 다다랐다.
대표 메뉴라는 감자적, 순옹심이, 도토리들깨수제비를 주문했다. 모든 주문한 음식이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건강한 맛이라 빈 그릇과 빈 접시가 될 때까지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었다. 감자옹심이가 맛있다고 느낀 적은 내 인생에 한 번뿐이었는데, ‘감자적 1번지’에 방문하게 되면서 두 번이 되었다.
배에 맛있는 에너지가 든든하게 채워지자, 숙소에서부터 이곳까지의 거리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밥심으로 돌아올 때는 버스도 타지 않고 숙소까지 걸어왔다. 갈 때는 올 때 못 봤던 바다를 보며 걸어왔는데, 노을이 지는 바다의 풍경과 함께라 긴 거리가 짧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고생을 사서 하던 것처럼 느껴지던 여정은 아름다운 여정이 되었다.
이번 강릉 여행에서는 사근진해변을 갔기 때문에, 기념품샵에서 사근진해변 사진이 인쇄된 메모지를 구매하려고 했다. 그런데 ‘감자적 1번지’를 방문하면서 사근진해변에 대한 추억이 뒤로 밀려났다. 행복 끝에 행복인 여행보다는 약간의 고생 끝에 행복인 여행이 기억에 남았다. 이러니 소품샵에서 감자를 테마로 만든 상품을 보자마자 안 꽂힐 수가 없었다(소품샵에 거대한 감자가 프린팅된 티셔츠도 있었는데 그것도 욕심나는 걸 참았다). 그날이 가장 여행이 맛있던 날이었으니까.
<감자밭 손수건>을 볼 때마다 손수건의 쓰임보다는 ‘감자적 1번지’에서 먹었던 감자옹심이가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감자옹심이 식당을 찾아보는데, 감자옹심이에 대한 기준이 높아져서는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