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포기한 역에서

Day 1~2 | 카이로에서 아스완, 밤새 900km

by 저기압 청춘


택시가 역주행을 했다.

정확히는 운전기사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선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집트에 차선이라는 개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맞은편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가까워지는 몇 초 동안 맞은편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도 놀란 표정이었다. 서로 놀라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카이로 시내에서 기자역까지 택시 창밖으로 도시의 야경이 흘러갔다. 카이로 성채가 조명을 받아 떠 있었고, 이름 모를 건물들이 연이어 지나갔다. 나중에 방문하게 될 곳들도 있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일단 살아서 도착하는 게 먼저였다.


기자역에 대한 정보는 출발 전부터 불안했다.

예약 확인서에는 ‘El Giza Station’이라고 적혀 있었다. 구글맵에서 검색하면 “폐업”이라고 떴다. 지금 확인해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이 역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일단 가장 가까운 역에서 택시를 내렸다. 역무원에게 야간열차를 어디서 탈 수 있는지 묻자,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걸어서 10분이라고 했다. 인도가 좁거나 아예 없는 구간에서 차들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현지인들은 그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나와 K군만 긴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El Giza Station


마침내 기자역이 보였다. 석조 기둥이 있는 입구에 ‘El Giza Station’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다행히 폐업이 아니었다. 역 승강장은 깨끗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꽤나 더러웠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이집트 첫 날에 그런 생각을 했으니, 나름 빠른 편이다.


여행객은 거의 없었다. 짐보따리를 든 현지인들이 플랫폼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구권 가족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정도였다. 우리는 확실히 소수였다.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타는 거 맞아. 근데 아마 30분 정도 늦을꺼야. 올때 쯤에 알려줄게”


확정도 위안이 되고, 친절함도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이 역이 맞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집트에 오기 전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박시시’였다. 호의를 베풀고 대가를 요구하는 관습이다. 이집트 전체 일정동안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역무원도, 택시에서 내릴 때 만난 사람도, 그저 친절했다. 우리가 운이 좋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이 여행 내내 계속되었다.


열차가 도착했다.

초록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차체가 플랫폼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열차 직원이 표를 확인하고 우리를 2인실로 안내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 방에 들어섰다. 직원이 좌석을 이층 침대로 바꿔주었다. 프레임에 녹이 슬어 있었다. 시트에는 무늬가 있었는데, 원래 디자인인지 얼룩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좌) 저녁에 제공받은 식사 (우) 아침 식사 맛을 기대하고 먹기에는 어렵다.


저녁 식사가 왔다. 검은 트레이에 닭고기, 밥, 빵. 비행기 기내식의 이집트 버전이라고 하면 정확하다. 맛은 없었지만 배를 채우는 데는 성공했다.

문제는 씻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거의 이틀째 샤워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대했던 샤워 시설은 열차에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2인실 안에 작은 세면대가 하나 있었다. 양치와 세수정도는 가능한 크기, 수압은 약했다.


작은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았다.


K군은 포기하고 “아스완 가서 씻죠”라고 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합리적이지 않았다.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았다. 졸졸 흐르는 물줄기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두피를 문질렀다. 자세는 비참하고, 효과는 미미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씻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이것이 여행이다, 같은 거창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머리가 기름졌고, 참을 수 없었을 뿐이다.


침대는 생각보다 편했다. 녹슨 프레임과 낡은 시트에도 불구하고, 눕자마자 온몸이 풀렸다. 피곤함의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카이로에서 보낸 하루가 어땠는지, 몸이 먼저 대답했다. 열차의 흔들림이 오히려 잠을 재촉했다.


차창밖으로 본 풍경, 카이로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눈을 떴을 때 열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카이로의 모래빛 건물 대신, 야자수가 늘어선 초록색 들판이 펼쳐졌다. 나일강 상류를 따라 열차는 달리고 있었다. 밭을 가는 사람, 흙길을 걷는 사람. RPG 게임에서 새로운 지역 맵으로 넘어갈 때의 느낌이었다. 배경음악부터 다르다.


아침 식사가 왔다. 빵, 치즈, 요구르트. 저녁보다 나았다. 기대치가 내려간 덕이다. 열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아스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착 직전 직원이 안내하며 팁을 요구했다. 잔돈이 없었다. 사실 얼마가 적정인지도 이집트에 막 들어와서 몰랐던 상태. 미안하다고만 했다.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돌아갔다.


밤새 달려 도착한 아스완역


플랫폼에 내려섰다. 'Aswan Station'이라고 적힌 검은 표지판이 보였다. 공기가 달랐다. 더 건조하고, 더 뜨거웠다. 카이로에서 밤새 달려온 열차가 데려다준 곳은, 분명히 같은 나라인데 다른 곳이었다.




저기압의 여행 수첩 — 야간열차 타는 법

기자역은 존재한다. 구글맵이 뭐라 하든.

아벨라(Abela) 야간열차는 공식 사이트 abelatrains.com에서 예약할 수 있다. 출발지, 도착지, 날짜를 고르고 여권 정보를 넣으면 된다. 약 두 달 전부터 예매가 열리니 일정이 잡히면 빨리 잡는 게 좋다. 외국인은 'Foreigner' 요금으로 선택하면 된다.

기자역(El Giza Station)은 구글맵에 '폐업'으로 뜨지만 멀쩡히 운영 중이다.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10분 거리. 열차는 보통 30분 정도 지연된다. 이집트에서는 정상이다.

2인실 침대칸에는 식사가 저녁·아침 두 번 포함된다. 맛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는 게 편하다. 음료와 간식은 역 주변 노점에서 미리 사 가는 걸 추천한다.

샤워 시설은 없다. 2인실 안에 작은 세면대가 있는데, 물이 약하게 나온다. 머리를 감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가능은 하다. 추천하지는 않는다.

직원 팁은 1인당 1~2달러 수준이 일반적이다. 잔돈 달러를 미리 챙겨두면 도착할 때 당황하지 않는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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