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의 약속

7. 불평등 조약

by 김수정


“일주일만 다녀보고, 정말 싫으면 그만둬도 돼.”


지금도 가끔 그때의 약속을 떠올리면 미안해진다. 아이는 그 말을 믿었고, 나는 지키지 않았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 국·영·수기초를 다지는 일은 중요하다고,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내 말을 어길 수 없었던 아이는 시간이 되면 말없이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학원에 가기 싫어 동네를 몇 바퀴씩 혼자 돌았다는 이야기를, 한참이 지나서야 듣게 되었다.


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유를 충분한 설명하지 못했고,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는 방황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묻혀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큰아이가 신이 나서 말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사격을 했는데 너무 신기했어."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사격반이 생기며 큰아이가 사격을 하고 온 것이다. 총도 신기하고, 과녁을 맞히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며 방과 후 사격에 빠져들었다. 얼마 전 학원 일로 힘들어하던 아이가 좋아하는 취미를 찾은 것 같아, 처음에는 환영하며 흔쾌히 허락했다. 그런데 점점 운동시간이 길어지며 다른 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렵게 다니기 시작한 학원도 자주 빼먹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제안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이 큰아들을 사격선수로 키우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것이다. 합숙 훈련을 포함해 학교 수업 외 시간은 대부분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며, 잘 상의한 뒤 결정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 교육에 대해 늘 나를 믿고 일임해 왔다. 교육에 관해서는 의견 충돌도 거의 없었고, 나와 아이들이 하고 싶다는 것을 상 응원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아들이 사격반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다. 초등학교 시절 체조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운동선수의 애로사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의 진로 문제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개입한 일이었다.


항상 뭐든 지지해 주던 아빠의 반대는 큰아들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아빠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큰아들은 며칠을 눈물로 보냈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큰아들 눈물에 '얼마간이라도 시켜볼까?'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타협 없는 그의 의견 앞에 아이도 나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사격을 했던 친구들이 대회에 나가 상이라도 받고 오면 아쉬운 듯 말했다. "내가 나갔으면 일등인데"라며.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 행진을 할 때면 "나도 계속했으면 국가대표였을 텐데"라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큰아들은 그때 아빠 말 듣길 잘했다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여러 번 말했다. 하지만 아들이 그 얘기를 꺼낼 때마다 남편과 나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큰아들이 6학년 때였다. 그 무렵 스케이트보드를 무척 타고 싶어 했는데, 너무 위험해 보여 사주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아들이 계속 조르자, 시험에서 올백을 맞으면 보드를 사주겠다고 처음으로 조건부 약속을 했다. 아들은 보드 때문이었는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올백은 아니지만 한 문제를 틀렸던 걸로 기억한다. 너무 아쉬워하는 아들에게 그것도 너무 잘했다며 우리는 기분 좋게 보드를 사주었다. 안전하게 타라는 약속과 함께.


큰아들은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쉽게 단념하지 않았다. 떼쟁이처럼 조르기도 많이 했다.


원하는 걸 금방 사주진 않았지만, 스스로 용돈을 모아 보태기도 하고, 일정 기간 약속을 지키면 아이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웬만한 것은 다 허락했지만, 유일하게 안 된다고 못 박은 것이 강아지와 핸드폰이었다. 강아지는 내가 키울 자신이 없었고, 핸드폰은 아이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호기심이 많았던 큰아들은 새로운 기계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특히 아주 어릴 적부터 핸드폰을 갖고 싶어 했는데, 처음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 일곱 살 무렵이었다. 손에 들고 다니며 어디서든 통화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1인 1 핸드폰이 당연해졌지만, 그 당시에 휴대폰을 갖고 있는 아이는 드물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한참 전, 2G폰이던 시절이었다.


아이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고, 청소년들의 휴대폰 결제로 인한 과잉 요금 청구, 핸드폰 게임 이용 등 여러 문제가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다뤄지던 때였다. 혹시 모를 영향을 염려한 나는, 큰아들이 핸드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핸드폰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핸드폰이 생기기 시작하자 자기도 갖고 싶다고 조르는 아들에게,


"이번 중간고사에서 일등 하면 사줄게."라고 덜컥 말해 버린 것이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일등이 어디 쉬운가, 상위권만 해도 충분하다'는 얄팍한 속내가 숨어 있었다.

그렇게 나의 섣부른 약속으로 핸드폰 전쟁이 시작되었다.


큰아들은 중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정말 일등을 했고, 성적표를 받아 든 우리는 다 놀라고 말았다. 물론 너무 기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아이도 나도 무척 행복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아들도 일등의 기쁨에 핸드폰 생각은 잠시 잊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큰아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사주지 않자 화가 잔뜩 나서 물었다.


"엄마, 왜 약속을 왜 안 지켜?" 사실, 할 말이 궁색했다.

"핸드폰 말고 다른 거, 너가 갖고 싶은 거 사주면 안 돼?"라며 아이를 설득하려 했다. 또 말을 바꾼 것이다.


너무 고가의 물건이고, 매달 결제해야 하는 핸드폰 요금도 큰돈이라며 여러 이유를 들었다. 무엇보다 '공부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이상한데 접속하면 어떡하지?' 등등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섰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 큰아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큰아들의 표정은, 마치 세상 무너진 얼굴이었다.


그후 1년 가까이 핸드폰 문제로 아들과 나는 수십 번 다퉜다. 핸드폰은 우리 사이에 놓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부모라 해도 아이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입장에서만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마주하고서야, 더 미뤄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록 늦었지만 결국 핸드폰을 사주었다. 중학교 1학년이 시작되며 했던 약속을, 중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야 지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어렵게 핸드폰을 받아 든 큰아들은, 생각만큼 신나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얻은 핸드폰이 반갑기도 했지만, 겨우 이것 때문에 엄마와 그렇게까지 싸웠나 싶어 허탈했다고 한다.


큰아들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선물이 없었어도 자기 미래를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을 거라고. 다만 약속을 어긴 엄마에 대한 상실과 배신감이 너무 컸다고 털어놓았다. 약속해놓고 어느 순간 자기가 떼쓰는 상황이 되니 억울했단다. 그 이후로는 공부를 잘해서 엄마를 기쁘게 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공부를 못해서 엄마를 슬프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마음 사이에서 오랫동안 힘들었다고.


그냥 쿨하게 사줬으면 더 좋았을 것을. 큰아들은 내 걱정과 달리 핸드폰에 빠지지도 않았고, 공부에 방해가 될 만큼 오래 사용하지도 않았다. 약속을 쉽게 저버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내 마음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보여 준 것이 지금 생각해도 좀 부끄럽다.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던 시기, 내 말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했다. 어릴 때는 절대적인 존재였던 엄마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는 자라며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더구나 이어진 사건들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버린 셈이었다.


한 번은 시험공부를 하던 아이의 시간표를 짜주다 크게 다툰 적도 있다. 중학교 시험 기간 중 수학 공부를 하고 있었던 아들에게, 미술 공부를 먼저 하고 어려운 수학은 나중에 하라고 했던 것이 큰아들의 반발을 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괜한 오지랖이었지만, 당시에는 미술 이론은 내가 도와줄 수 있으니 빨리 끝내고, 시간이 더 걸리는 다른 과목에 집중하길 바랐던 것이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잘하고 있는 아들에게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일이 되고 말았다.


큰아들은 자기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는 아이였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따져 묻는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말다툼으로 번졌다. 큰아들과 난 둘 다 닭띠였는데, 남편은 종종 “우리 집은 닭 두 마리가 맨날 싸운다니까.” 하며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곤 했다. 한 번 말싸움이 시작되면 서로 지지 않으려는 자존심 싸움으로 커지기 일쑤였다.


사춘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되돌아보면, 그 격랑의 한가운데에 나 역시 서 있었다.

사춘기 큰아들을 더 방황하게 만든 것 역시, 아이를 믿기보다 앞서 걱정하고 통제하려 했던 내 욕심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큰아들은 사춘기와 어려운 입시를 지나오며 크게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잘 자라 주었다. 부모로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주변에서 가끔 묻는다. "어쩜 그렇게 아들들을 반듯하게 잘 키웠냐고"


이제 와 돌아보면, 남편과 내가 잘 키웠다기보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성장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늦었지만 아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나의 사과이기도 하다.


"큰아들, 그때 약속 안 지켜서 미안해. 그리고 잘 자라줘서 고마워~!!"




다음 화에서는 ‘예스맨’ 둘째 아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찾아와 주신 독자님들께~

방학이라 수업도 많고 개인적으로 바쁜 일들이 겹쳐,

소중한 답글에 답도 못 하고, 작가님들 글방에도 제때 들르지 못하고 있어요.

바쁜 일들이 마무리되는 대로, 늦더라도 벗님들 글방에 꼭꼭 찾아갈게요.
추운 겨울, 서로의 온기로 조금 더 따뜻해지시길 바랍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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