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

8. 근데, 요령을 곁들인

by 김수정


큰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난 후 둘째에 대해 생각하니,

참 말도 잘 듣고 키우기 쉬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걱정되었던 아이.

학교, 학원에서 똑똑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 아이.


둘째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우리를 자주 걱정시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체중 미달일 정도로 마른 체형이었다. 어려서는 잘 안 먹어서 그랬다지만, 크면서는 잘 먹고 잠도 충분히 자는데도 체력이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한 번은 남편과 함께 목욕을 갔다가 아이가 쓰러져 119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다. 온탕에서 나오던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고 한다. 어지럼증을 느끼며 쓰러진 아이가 잠깐 기절했다가 깨어났다고.


남편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얼마나 가슴이 덜덜 떨렸는 모른다. 그 순간의 놀람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다행히 충분히 휴식하며 별다른 이상 없이 잘 회복되었지만, 우리는 한동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를 바라봐야 했다. 남편도 얼마나 놀랐는지 그 일이 있고 난 뒤 오랫동안 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몸으로 갈 영양소가 다 머리로 갔던 걸까. 둘째는 또래에 비해서 똑똑한 편이었다.


동생에 대해, 큰아들이 자기의 기억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큰애가 일곱 살 무렵, 자신이 학습지를 풀고 있으면 뒤에서 그걸 구경하던 동생이 답을 먼저 말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학습지 선생님이 다섯살짜리 동생을 칭찬하는 일이 잦았는데, 당시에는 자기도 알고 있던 문제를 동생이 먼저 맞히는 게 못마땅하기도 했고,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학습지 선생님이 칭찬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커서 어릴 적을 회상해 보니, 두 살이나 어렸던 동생이 따로 배운 것도 아니고 구경하면서 맞췄던 걸 깨닫고, 동생이 꽤나 똑똑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둘째는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눈치로 배우고 알아가는 것도 많았다.




큰아들과 내가 서로에게 유난히 예민하던 시기, 둘째는 중간에서 우리 눈치를 많이 봤다.


그 시기에 내 말은 걱정보다는 간섭이었고, 차분히 시작한 대화가 결국 다툼으로 번지는 것도 어쩌면 너무 당연했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 화를 냈는지를 두고 큰애와 나는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가 먼저 짜증 냈잖아!"

"니가 먼저 짜증 내서 나도 그런 거거든? 다음부터는 녹음이라도 해야지, 원. 아휴."

누가 중딩인 건지. 애에게 지지 않으려고 우기다 결국 그 화가 둘째에게까지 미쳤다.

"너가 말해봐, 누가 먼저 짜증 냈는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중간에서 둘째는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그 시기 둘째는, 자기도 나름 서운한 게 있었는데 우리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핸드폰도 갖고 싶었지만, 형처럼 싸워 가며 얻고 싶지는 않아 스스로 포기했고, 무엇보다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오며

둘째는 매사에 ‘NO’보다는 ‘YES’를 먼저 말하는 아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둘째가 4학년이 되며 큰애가 다니는 국. 영. 수 학원에 보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큰애의 반발을 겪어 본 터라, 둘째 역시 다니기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형 다니는 학원, 같이 다녀볼래?"

"응, 좋아!"


둘째의 대답은 쿨했다. 어려서부터 형이 약을 먹으면 자기도 달라고 조르던 아이, 학습지도 자기도 하겠다며, 형이 하면 뭐든 따라 하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그래서였는지 학원도 별다른 저항 없이 형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둘째에게는 ‘일주일 체험’ 같은 과정도 필요 없었다.


큰아이는 학원에 다니면서 몰래 땡땡이를 치곤 해, 원장님의 전화를 종종 받기도 했지만, 둘째는 특별히 몸이 아프지 않은 한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


큰아들을 키우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내가 알아서 할게" 였다면,

둘째는 내 말에 늘 "좋아"라고 순응하던 아이였다.


둘째가 묵묵히 따라주니 키우는 게 훨씬 수월했다. 공부 시간표를 짜주려다 다퉜던 큰애와는 다르게, 둘째는 내가 짜주는 시간표를 큰 거부감 없이 따랐다. 시험 기간이 되어 문제집을 풀 때도 내가 정해준만큼 척척 해냈다. 나는 옆에서 시험지를 채점해 주고 둘째는 오답을 정리하며 공부했다.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아들과 나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여갔다.


이번 글을 쓰며 둘째와 통화를 했다. 혹시 서운했거나 마음에 남아 있는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둘째는 자라면서 크게 불만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내 앞에서는 다 알겠다고 했지만, 공부하는 척하며 하지 않거나 딴짓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난 이번에 전화하면서 그걸 처음 알게 되었으니. 꽤나 성공적인 연기였던 셈이다.


집에서 내 말을 잘 듣던 둘째는 학교에서도 선생님 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고, 또 수줍음이 많은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랬던 아이의 반전 모습에 한 번은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교복 바지 때문이었다. 종아리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바지 모양이 내 눈에는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세탁소에 혼자 가서 바지를 줄인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 무렵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복을 줄여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남학생들은 바지통을 좁게 줄였고, 여학생들은 스커트를 타이트하게 줄여 몸에 딱 달라붙게 입곤 했다. 늘 얌전하던 아이가 그 유행을 따라 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왠지 귀여웠다. 그래서 따로 혼내지도 않았고, 웬만한 일들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거니 믿고 간섭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 나를 걱정시켰던 체력 문제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부모 모임에서 한 엄마가 농담처럼 말했다.

“저는 체육고등학교 보낸 줄 알았어요. 집에 오면 친구들과 농구, 축구 이야기만 한가득 늘어놓거든요.”


둘째는 원래 운동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뛰고, 경기하는 과정 속에서 체력이 길러진 모양이었다.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매년 열리는 학교 축제에 초대받아 갔을 때도 우리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둘째가 축제 사회를 맡았고, 무대 위에서는 음악에 맞춰 아이돌 춤까지 선보였다. 무대에서 춤추는 아들과 환호하는 학생들의 모습, 예상치 못한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다. 바지 줄일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사실 꽤나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성당 여선생님들을 휘어잡던 아빠를 닮았던 걸까. 멋도 제법 부리고, 학교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는 듯했다.

공부는 소홀히 하고 다른데 눈 돌릴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아들의 멋진 모습에 마음 한편이 뿌듯했다.



돌아보면 두 아이의 성향도, 그에 따른 나의 교육 방식도 달랐다.

자식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 두 아들을 키워 오며,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실감한다.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던 큰아들도,

무엇이든 “좋아”라고 대답하던 속 깊은 둘째도, 각자의 방식으로 올곧게 성장해 왔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다. 앞서 걱정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 가장 큰 응원임을.




P.S. 다음 화는 문과생 큰아들의 입시기와, 이과생 둘째의 달라도 너무 다른 입시기를 이어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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