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다시, 나로
매년 새해가 되면 우리 가족은 한자리에 둘러앉아 우리 집만의 신년회를 열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며 한 해의 바람이나 목표를 적는 시간이었다. 남편과 나, 아이들이 차례로 각자 이름 옆에 자기의 계획을 서너 가지씩 적어 내려갔다.
남편은 주로 운동이나 독서 같은 자기 관리에 관한 계획을 적었다. 그중에서도 꼭 빠지지 않는 항목이 하나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아내와 여행하기’였다. 그 문장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났다.
나는 학원을 운영하고 방과 후 강사로 일하며 수강생 모집이나 출강에 대한 목표를 적었다. 또 나에게는 중요했던 한 가지, '저축해서 부자 되기'도 있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우리 집은 이미 '부자'라고 말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아빠와 아들이 있어서 부자라고. 나는 그 말이 매번 왜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다.
아이들도 제법 진지하게 한해 목표를 고민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장학금 받기, 자격증 취득처럼 학생다운 계획을 세웠다. 진로와 관련된 목표나 복근 만들기 같은 운동이 추가되기도 했다.
종이 한 장에 가족 네 사람의 계획이 가지런히 채워지고 나면, 한 해의 방향이 조금은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계획을 읽어 내려가며 서로를 응원했다. 실현 가능하겠냐며 웃기도 하고, 올해는 꼭 잘해보자며 손뼉을 서로 마주치기도 했다. 그렇게 적은 종이는 냉장고 앞에 붙여 놓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며 볼 수 있었다. 기억하자는 의미로 가족 단톡방 공지에도 올려 두었다.
한 번은 아이들의 사촌 형제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냉장고 앞 새해 목표를 보고 깔깔 웃었다.
두 아들이 적어 놓은 '영어 공부하기', '복근 만들기'를 보더니,
“영어 공부? 이건 얼마나 공부했는지 확인 가능한 거냐?”
"복근은 만들었다가 언제까지 유지해야 인정이냐?"
하며 장난스럽게 놀려댔다. 우리도 맞장구치며 같이 웃고 말았다.
목표를 모두 지키는 사람에게 백만 원의 포상금을 걸기도 했다. 목표에 대한 열정을 더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포상금을 받은 사람을 아무도 없다. 늘 한두 가지는 이루었고, 한두 가지는 미뤄졌다.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적어 두었기 때문에 한 번쯤 더 떠올렸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아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 주말이면 항상 북적이던 집이 조용해졌다. 늘 아이들에게 맞춰 움직이던 시간도, 시험 기간마다 같이 긴장하던 날들도 지나갔다.
모처럼 찾아온 여유로운 휴일, 남편이 새벽 골프를 나간 날이면 나는 늦잠을 자고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오후에는 골프에서 돌아온 남편과 종종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 시절에 개봉하는 영화를 빠짐없이 챙겨볼 만큼, 팝콘과 콜라를 나눠 먹으며 나란히 앉아 스크린에 몰입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아이들과 넷이 함께하는 여행도 물론 좋았지만, 둘만의 여행에는 또 다른 여유가 있었다. 시간에 쫓길 일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꽤 잘 맞는 여행 파트너였다. 오가는 길 수다가 끊이지 않았고, 그의 유쾌한 농담과 어딘가 허당기 있는 모습은 나를 무방비로 웃게 만들었다. 함께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우리는 아이들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언젠가 맞이할 우리의 노후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들들이 결혼하면 가족모임은 일 년에 네 번이면 충분하다고 말하곤 했다. 명절과 우리 생일에는 함께 모이자고. 며느리로서 내가 느꼈던 부담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의외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막상 며느리 들어오고 손주 생기면 달라질걸?"
"그럴까?, 그래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돼.”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정말 우리 둘이 함께라면 늙어가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네 번은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실 아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떠나고 두 번째 봄이 찾아왔을 무렵, 나는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다. 홈쇼핑에서 우연히 보게 된 패키지여행 상품이었다. 풍경이 아름다워 언젠가 함께 가자고 했던 튀르키예였다. 무슨 용기였는지, 무려 10박 11일 일정의 여행길에 올랐다.
TV 화면에서 보던 바로 그 장면, 일출로 붉게 물든 하늘 위로 수백 개의 열기구가 천천히 떠올랐다. 실제로 마주한 풍경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오롯이 혼자였던 여행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더 빛난다는 것을,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돌아보면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다시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족과 일이 전부였던 나는 미뤄왔던 취미를 하나둘 찾아가기 시작했다.
디자인 전공이라서 오래전부터 서양화를 다시 배우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서양화 반에 등록해 그림을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꽃꽂이 수업에도 나갔다. 학기를 마친 뒤에는 그동안 그린 작품들로 수강생들과 함께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직접 꽃꽂이한 꽃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집 안에도 꽃향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삶의 중심이 조금씩 가족의 시간표에서 나의 시간표로 옮겨가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온 가족이 모여 새해 목표를 썼다. 이제는 며느리도 함께한다. 계획을 고민하며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는 모습이 참 예쁘고 기특하다. 그러다 며느리가 적고 있는 한 문장을 보고 문득 웃음이 났다. 며느리의 계획표 맨 위에 있는 ‘저축하기’였다.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닮아 있는 마음이 왠지 반가웠다.
이제 내 새해 계획의 첫 줄은 글쓰기이다.
꾸준히 글을 쓰며 주 1회 브런치북을 연재하고,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을 내고, 작은 그림 전시회도 열어보고 싶다는 계획을 세운다.
꾹꾹 눌러 적었으니 이미 절반은 이룬 셈이다.
PS. 지각 연재를 올립니다. 기다려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서울에 살던 큰아들이 직장을 옮기면서 우리 집으로 이사 왔어요. ㅎㅎ
아들 이사로 몇 주가 훌쩍 지나갔네요. 짐이 많아 짐 정리가 너무 힘들었어요.ㅠ
그사이 남편의 5주기도 보냈답니다. 큰아들이 곁에 있으니 여러모로 든든했습니다.
요즘 글쓰기가 너무 안 써져요. 쓸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ㅠ
꾸준히 잘 이어가자는 다짐을 해 봅니다.
다음 화도 진솔한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여기저기 꽃 잔치입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봄날 되시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