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달리고 배우고 성장하며
남편과 나는 일 년에 두세 번 아이들 학교에 초대받아 서울로 향했다.
미리 휴가를 내고,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큰아들은 대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주어진 자유가 처음엔 얼떨떨했다고 한다.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친구들과 밤을 새워 pc 방에서 게임을 하고 놀아도, 크게 간섭받지 않는 일상이 낯설면서도 설렜다고. 특히 엄마인 나의 변화에 가장 놀랐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잔소리를 할 상황에도 야단치지 않았고, 잘 있는 것만 확인하면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나는 성인이 된 아들을 마음에서 독립시켰다. 아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리라 믿으며,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지켜보는 엄마가 되어 갔다. 믿음이 생기니 괜한 잔소리도 줄어들었다.
아이는 새장 밖으로 날아간 새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큰아들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노래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며 정기 공연이 열릴 때면 우리를 초대했다. 꽃다발을 들고 객석에 앉아 무대 위의 아들을 바라보는 일은 참 뿌듯하고 설레는 순간이었다. 마술 동아리에서도 활동했는데, 집에 와서 가끔 보여주던 카드 마술은 어찌나 신기하던지 가족 모두가 감탄하며 웃곤 했다.
카페 알바를 하며 용돈도 벌어보고, 친구들과 원 없이 놀기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학업은 뒷전일 때도 많았다. 그렇게 청춘을 누리던 아이는 때가 되어 군대로 향했다.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는 6개월간의 공백이 생기며, 큰아들은 뜻밖에도 노가다 일을 해 보겠다고 했다. 남편의 권유가 있었고, 아빠 말을 잘 따르는 아이였기에 가능했던 결정이었다. '아이에게 왜 그 힘든 일 하라는 건지' 나는 영 못마땅했지만 말이다.
큰아들은 남편 친구가 소개해준 용역회사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첫날 맡은 일은 20kg의 쌀 포대를 나르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며칠 못 버티고 나가떨어질 거라 예상해 일부러 강도 높은 일을 시켰다고 한다. 요령도, 경험도 없던 아이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팔을 제대로 굽히지도 못할 만큼 아파했다.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지만,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힘들어하면서도 아침 여섯 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현장으로 향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그 과정이 아들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큰아이가 대학 가고 일 년 뒤, 둘째도 대학에 입학하며 우리 가족은 넷이 모이기가 더 어려워졌다. 두 아들은 집안 행사가 있어야만 겨우 시간을 맞춰 서울에서 내려왔다.
어버이날에 모처럼 내려온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다. 이런저런 대학 생활 이야기가 오가던 중 둘째가 불쑥 말했다.
"엄마 나 길거리 캐스팅됐어."
"응?"
"나는 지원만 하면 무조건 뽑아준대"
처음엔 연예인 캐스팅이라도 된 건가 싶었다.
알고 보니 학교 축제 기간에 우연히 만난 응원단 선배가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겠느냐"라고 권한 것을 허풍을 섞어 이야기한 것이었다.
둘째의 말을 들은 남편과 나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나는 ‘그냥 착실히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였다. 큰아들 역시 애교심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동아리라며 그다지 탐탁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공부만 하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며 오히려 반겼다.
“둘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니, 사람들 앞에도 서 보고 더 담대함을 키울 수 있겠다.”며 아이를 응원해 주었다.
망설이던 아이는 아빠의 든든한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는지 결국 응원단 동아리에 들어갔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축제 무대가 그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응원단 활동을 하며 아이의 응축되었던 에너지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걱정보다 응원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남편의 말처럼, 아이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랐다.
그해 여름방학, 강원도에서 일주일간의 응원단 합숙 훈련이 있었다. 우리는 합숙이 끝나는 날에 맞춰 강원도로 가족 여행지를 잡고 둘째를 픽업하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둘째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까맣게 타 있었다. 샤워도 못 한 채 체육복 차림으로 뛰어나온 아이에게는 땀 냄새가 폴폴 묻어났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큰아들은 "아유, 냄새"하며 장난스럽게 동생을 타박했다.
둘째는 해맑게 웃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합숙 기간 동안 마라톤과 설악산 등반, 이어지는 응원 연습까지 거의 극기훈련과도 같은 일정을 보냈다고 했다.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복숭아를 파는 노점 본 둘째가 문득 말했다.
"엄마, 나 복숭아가 너무 먹고 싶어"
"그래?"
남편은 차를 세우고 복숭아를 샀다.
마라톤을 뛰며 목이 몹시 말랐는데, 길가에서 복숭아를 팔고 있었단다. 먹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괜히 대열에서 이탈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고 했다. 달리면서도 내내 복숭아 생각뿐이었다며, 그때 못 먹은 복숭아가 자꾸 아른거렸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이 고생을 왜 사서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좀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겠지'라는 마음도 함께 있었다.
응원단은 규율이 엄격했고 훈련 강도도 만만치 않았다. 둘째는 많은 시간을 응원단에 쏟아부었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몸은 고단했지만, 선후배들과 관계를 쌓으며 하나의 팀이 되어 가는 과정이 꽤 보람되었던 모양이다. 마르고 약해 보였던 아이는 응원단 활동을 하며 체력이 붙기 시작했고, 어느새 운동선수 같은 단단한 체격으로 변해 있었다.
그저 한때의 열정일 줄 알았는데, 둘째는 응원단 활동을 4년 내내 이어갔다.
평단원으로 시작해 조단장이 되었고, 이어 부단장을 거쳐 마침내 4학년 때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연습 일정부터 행사 기획, 단원들 사이의 갈등 조율까지, 둘째는 응원단 리더로서 모든 행사를 총괄하며 한 해를 무사히 잘 마무리했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아이가 새삼 자랑스러웠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면 학교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노래를 곧잘 하는 큰아들은 노래 공연에, 둘째는 응원단 행사에 우리를 초대했다.
특히 둘째 학교는 행사 규모가 크고 열기가 대단했다.
봄에는 축제에, 가을에는 1박 2일로 진행되는 학교 대항전 경기와 응원을 보러 갔다. 그러면서 캠퍼스도 둘러보고 자연스럽게 아들들의 학교생활도 엿볼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의 20대, 그 빛나는 계절을 우리도 함께 했다.
젊음의 열기와 함성으로 가득했던 그 순간,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https://youtu.be/wNx6WZE759g?si=rj0RXkk6W5MUGUks
P.S. 둘째가 응원단장으로 활동했던 영상입니다. 아들의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벌써 10년 전이네요. 그 아들이 이제 아기 아빠가 되었답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11화까지는 아내와 엄마의 이야기였습니다. 12화부터는 '다시 나로'의 여정을 이어갑니다.
다음 주는 개인 일정으로 쉬어가요. 12화에서 다시 만나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