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들

10. 이과생 둘째의 이야기

by 김수정


아이의 방에서는 가끔 금속 타는 냄새가 났다.


문을 열면 책상 위에 초록색 회로판이 놓여 있고, 인두기로 납을 녹여내고 있었다.

그때 이미 둘째는 공대생의 느낌이 물씬 났던 것 같다.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학교 방과 후 과목에 '로봇과학반'이 신설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그 수업을 듣고 싶다며 신청서를 내밀었다. 어려서부터 레고 조립을 유난히 좋아하던 아이라 재미있는 수업이 될 것 같았다.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전용 키트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가방 안에는 기어와 모터, 나사 같은 기계 부품들과 *인두기가 들어 있었다.

*인두기-납땜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전자회로 기판에 부품을 붙이거나 전선을 연결할 때 주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회로를 연결하고 프로그램을 입력해 로봇이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로봇대회에 출전했다. 도대회에서 수상하며 전국대회에도 나가게 되었다.


한 번은 아들이 참가한 대회를 직접 관전하며 응원한 적이 있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전국 로봇대회였다. 넓은 전시장 안에는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가득했고, 아이들은 따로 분리된 부스에서 저마다 진지한 얼굴로 로봇을 점검하고 있었다.


아들은 친구와 2인 1조로 출전했다.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한 경기였다.


우리 아이들의 순서가 되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초반부터 프로그램이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아 로봇은 여러 차례 멈춰 섰고, 고전을 거듭했다. 멀리서 지켜보는 내 마음도 같이 조마조마했다. 아이들은 여러 차례 반복하며 오류를 하나씩 수정해 나갔고, 제한 시간을 몇 분을 남기고 간신히 모든 미션을 완수했다. 그 결과 수상까지 이어지며 아이는 경험과 자신감을 키워 나갔다.


이후 참가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계대회 출전권을 얻었고,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제로봇올림피아드에 참가해 동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둘째는 중학교에 입학하며 교육청 과학영재반 선발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로봇 부문에서의 활동과, 6학년 때 과학전람회에 참가해 탐구 과정을 경험한 것이 중요한 기초가 되었던 것 같다.


과학영재반 수업은 실험과 관찰을 중심의 심화 과정이었다. 수업에 참여하며 과학에 대한 흥미가 쌓이자 자연스럽게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과학고 준비는 보통 일찍 시작하는 편이다. 둘째는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진학을 결심했다. 우수한 학생들 사이에서 교과 과정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지원조차 하지 않으면 후회로 남을 것 같았고, 도전하는 과정도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1차 서류 전형과 2차 면접, 마지막 3차 전형은 1박 2일 과학캠프로 이어졌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 둘째는 과학고에 합격했다.


“정말? 정말 합격이라고?”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았기에 결과에 감사했고, 어쩌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참 많이 기뻤다.


과학고에 합격하자 기쁨도 잠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했다. 무엇보다 수학이 시급했다. 다른 아이들은 수Ⅱ까지 마치고 온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입학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그 기간에 수학Ⅰ을 끝냈다. 마스터했다기보다 전 범위를 한 번 훑어본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둘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과학고는 전 학년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처음에는 공부도, 낯선 공동생활도 모두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아들은 이내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 빠르게 적응해 갔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향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또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학교 축제에서도 둘째의 활약이 돋보였다. 춤도 잘 추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대견했다.


처음엔 둘째가 과학고 가서 공부 때문에 엄청 고생할 줄 알았는데, 교과과정을 무난히 잘 따라갔다.


과학고의 공부 방식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학교 선생님의 관리와 감독 아래 규율이 엄격했던 큰아이와는 달리, 둘째는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자율학습의 분위기가 강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선생님이 따로 깨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자율이 큰 만큼 책임도 따랐고, 스스로 계획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뒤처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둘째는 주말에 집에 오면 거의 잠만 자다 돌아갔다. 그런 동생을 보며 큰아들은 "도대체 언제 공부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머리가 좋다니까.."라는 말을 종종 했다. 자기에 비해 공부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나 보다.


둘째는 자기만의 속도로 성과들을 이루어갔다. 전람회나 공모전의 기회도 많아, 직접 주제를 정하고 탐구 과정을 설계해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수상경력과 활동 기록은 대학 입시에서 긍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과학고는 수능보다 수시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큰아들의 입시는 전형이 복잡하고 다양했다. 결국 큰아들은 정시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시를 준비하고 논술 시험을 보러 다니며 쏟아부은 시간과 에너지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둘째의 입시는 비교적 단순했다.

과학고 전형으로 수시에 지원하면 되었기에, 방향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마음이 한결 편했다.


둘째가 과학고에 다니던 때는 조기 졸업으로 거의 80%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했다. 2학년 여름방학이 다가오면 지원 대학과 자기소개서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힌다. 둘째는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보다 일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했고, 우리는 그 선택을 응원했다.


둘째는 원하는 대학 세 곳에 원서를 지원했다.


세 곳 중 두 곳의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남은 관문은 구술면접이었다. 그중 한 학교에는 나도 함께 동행했다. 아침 일찍 시작되는 일정이라 우리는 전날 학교 근처에 방을 잡고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면접장 앞은 학부모들과 아이들로 가득했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 틈에서 둘째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아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 이번 시험은 망한 것 같아.”


면접관 앞에서 문제를 풀고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인데, 풀이 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이다. 풀 죽은 아이의 모습을 보며 대학 입시의 어려움을 또 한 번 실감했다.


결과는 두 학교 모두 최초합에서 탈락이었다. 다행히 예비번호를 받았지만, 그 숫자는 기대와 불안을 함께 안겨주었다. 추가합격은 전화로 통보된다는 걸 알기에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혹시 모를 전화를 기다렸다.


수시가 끝나면 최신형 핸드폰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추가합격을 기다리며 난 또 망설이고 있었다. 실망한 둘째가 형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동생에게 전후 사정을 들은 큰아들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또 약속 안 지키게? 합격 여부를 떠나 무조건 사줘.”


그래야 동생도 다음을 준비하는 데 힘을 낼 수 있다며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날 설득했다. 난 또 그렇게 등 떠밀려서야 겨우 약속을 지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남편도 “아직은 막내가 대학 가서 공부하기엔 이른 것 같다며, 실력을 더 쌓고 가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아들도 아빠 말에 수긍하며 3학년에 남아 한 번 더 도전하는 쪽으로 마음을 잡아갔다.


사실 지금이야, 그 일 년이 그리 큰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안다. 3학년에 남아 일 년 더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합격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거의 마음을 비우고 있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남편과 점심을 먹으며 둘째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둘째 아들이었다.


“엄마, 나 합격~!!”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들의 들뜬 목소리에, 조금 전까지의 담담함은 사라지고 우리도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 방학을 하는 날이었는데, 거의 막바지에 전해진 합격 소식에 순간 교실 안은 친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고 했다.


예비번호가 아들 바로 뒤였던 친구가 합격하지 못한 걸 보면, 우리 아들이 거의 문을 닫고 들어간 셈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다른 학교에서도 추가합격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또 한 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먼저 대학에 간 큰아들은 지원한 세 곳 모두 최초합이었고, 둘째는 추가합격으로 마지막 문턱을 넘었다.


대학 입시의 여러 변수 속에서 문과생 큰아들과 이과생 둘째는 서로 다른 과정을 거치며,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다음 화는 얼굴 보기 힘들어진 두 아들의 대학 생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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