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바통 옮기기
연대 러닝이라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한 명이 뛰고 그다음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체육대회에서 했던 이어달리기이다. 새벽 5시, 나는 뜻하지 않게 집 안을 환하게 밝혀 주는 불 켜놓기 바통을 아이에게 넘겨받았다.
아침 5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를 처음 발견한 그날부터 나와 아이의 긴 긴 대화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노력으로 아이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 육아서에 나오는 좋은 이야기들과 감동의 순간들을 생동감 있게 아이에게 전해 줄 땐 내가 마치 김미경 선생님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거꾸로 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이제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있다.
아이는 다행히 자고 있지만, 잠든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5년 동안 아이와의 긴 긴 여행을 거치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에서도 힘든 일들이 생겨 나는 번아웃을 경험했다. 아이는 아이의 방에서, 나는 나의 방에서 밤새 유튜브 드라마 시청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 괴로웠지만, 신기하게 그 유튜브 세계에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었다. 힐링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새벽 3시가 넘어가면 내가 유튜브를 보는 건지 유튜브가 나를 보는 건지 핸드폰이 내 얼굴을 몇 번 강타하고 나면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이 생활을 일 년 가량 지내고 나니,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방영했던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를 유튜브에서 볼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이 봤기에 그 35년 전 드라마가 나온 것인가.
지금도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게임하기 좋아하고 늦게 자기 선수이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변했다.
아이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도 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는 아이의 시간이 있다는 걸 말이다. 아이는 현재 문 속에 들어가 있는데 그 문에는 손잡이가 안에만 있다. 내가 억지로 손잡이를 만들게 될수록 아이는 점점 그 문을 세게 닫는다.
나는 현재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행복하게 나의 루틴들을 해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하고 싶은 운동도 하고 말씀도 외우고 꿈꿔왔던 외국어 공부도 한다.
저녁 10시가 되면 자연스레 졸려서 아이를 20초 찐하게 앉아주고 나는 쿨하게 잠자러 간다.
대신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을 전해주는 역할은 엄마의 특권 선물이라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앞으로의 5년 후가 궁금하다.
나의 모습도 궁금하고 아이의 모습도 궁금하다.
그리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선택도 잘했다고 생각할지 궁금하다.
혹여라도 나처럼 사춘기 아이들로 힘들어하는 분이 계시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춘기의 시작은 곧 나의 자기 계발 시간의 시작이다.
감사합니다.
꾸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