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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이 Jan 23. 2021

아들과의 대화

9. 사회가 나를 깨끗하게 살게 만들어 주네요.

"엄마 운동가요."

아들은 밤 10:30분 운동을 가자고 합니다. 오늘 너무 바빠서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은데 산을 한 바퀴 뛰고 오면 날 것 같다고, 그래서 우린 둘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날씨가 많이 푹해져서 봄이 올 것만 같습니다. 

아들이 뛰어가면 저는 천천히 뛰고 아들이 뒤를 돌아보면 천천히 걷는 척하고 걸어가면 아들은 어린 시절처럼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와 이젠 제가 아들품에 안깁니다.


이렇게 한 시간쯤 뛰고 나서  걸어가며 아들이 "엄마 핸드폰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 같아요." 핸드폰으로 글을 써서 보내느라 오랫동안 사용해서 머리가 아픈 것 같다고 하며 "저기 있는 사람도 운동하면서도 핸드폰을 자꾸만 꺼내보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현관 앞에 핸드폰 꼽아놓는 곳을 만들어놓고 집에 들어오면서 핸드폰을 꼽아두고 들어오는 가족들도 있다고 하더라 했더니 우리 집도 그렇게 하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핸드폰 없던 시절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때는 집이나 회사 그리고 약속 장소 커피숍, 다방 같은 곳에서 나 전화를 받을 수가 있어서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곤 했지, 주말엔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기다리기도 하고 다방에서 기다리다 나갔다 들어오면 다시 차를 시켜야 해서 그냥 앉아있으면 분비는 다방에서는 눈치도 보이고 오랜 시간 앉아서 기다리던 사람의 파트너가 오면 DJ가 몇 번 테이블에 기다리던 애인이 지금 도착했습니다 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보기도 하고 만약에 너랑 약속이 있었는데 상대가 안 나오면 집에 전화를 하면 집에서도 가족들이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 지도 알게 되고 그랬다고 했더니 아들은 신기한 듯 다방에서 어떤 커피를 마셨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땐 다방 레이지(lady)가 커피를 찻잔에 내오거나 주전자를 가져와서 따라줬지 그러면서 프림 넣어드릴까요? 하면 얼마큼 넣어 달라고 말을 했어. 설탕 그릇은 테이블 위에 있었던 것 같다. 재떨이랑 큰 곽성냥갑도~ㅋㅋㅋ 아들은 신기해합니다. 다방에는 껌팔이 소년이나 껌팔이 할머니가 자주 들어와서 데이트하는 사람들은 많이 힘들어했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담배연기 자욱했던 그 시절 다방을 한 바퀴 돌고 나온 기분이 듭니다.


아들은 오늘 회의에 참석했는데 참석했던 사람 중에 요즘은 노래방 도우미를 불러서 놀면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라고 하더라고 하며 앞으로 그 사람은 멀리 해야 할 것 같다고 하기에 그럼 너는 그런 곳에 윗사람이 가자고 하면 안 가느냐고 물어봤더니 친한 형들이 가자고 해도 나는 싫다고 했다며 깨끗이 살다 보니까 주변에 깨끗한 사람들만 남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요즘은 사회가 나를 깨끗하게 살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선배들이 세상에서 최고인양 설쳤는데 제대 후 복학했을 때는 학교의 선후배가 평준화되어있고 직장도 이젠 평준화가 되어가고 있어서 참 좋아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윗사람이라는 존재들의 거드름 피우며 옳지 않은 관행을 내세워하기 싫어도 함께해야만 했던 불공정행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었는가 앞으로는 더 많이 변해서 후손들의 사회생활이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없는 사람 사는 게 이런 맛이지 하는 기분이 드는 공정한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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