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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이 Apr 03. 2023

종교탄압

3. 나는 아무 말도 안 들은 듯

며칠 전 부서를 이동해서 인수인계받는 과정에서 전담당직원이 처리 못한 일을 빨리 처리해 달라고  본사에서 계속 연락이 오고 있어서 오늘은 야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같은 부서 동갑내기 남자직원이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 익숙하지 않은 일 독촉전화 일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었다.

“엄마한테 가봐야 할 것 같아, 엄마가 많이 아프시데.”

이마가 찌푸려지며 숨이 콱 막혔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하지 “

했더니

"엄마가 이러다 돌아가실까 봐 걱정이야 “

라며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하는 남편 한데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좀 늦을 것 같아요.”

했더니 남편이

"그럼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 “

해서

" 알았어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무슨 일이야?”

하고 물어서

“시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데. “

하고 말했더니 남자직원이

“많이 신경 쓰이겠다.”

하며 나를 쳐다봤다.

"아, 짜증 나, 남편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고 있어."

했더니

같은 부서 남자 직원이

“제가 오늘일 늦게까지 해놓고 갈 테니 시댁에 다녀오세요. 나중에 무슨 일 있으면 원망 들어요."

그래서 일을 대충 정리해서 남자직원한테 주고 나는 퇴근을 했다. 남편은 회사 앞에서 초조하게 서있었다.

" 왜, 집에 가서 기다리지."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조금이라도 엄마한테 빨리 가려고."

우린 버스를 타고 버스 안에서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차에서 내려서는 큰일이 벌어진 듯 급하게 걸어갔다

남편은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대문에 있는 벨을 눌렀다.

시어머니가 뛰어나오며

"니들 왔니?"

하고 쳐다보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 왜들 그렇게 서있니 어서 들어와라."

그녀의 백치 같은 미소는 마치 더럽게 낙서한 벽을 페인트로 말끔히 칠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의 바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화상, 곧 죽을 듯 아프다고 해놓고 신발도 거꾸로 신고 뛰어나온 시어머니를 보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무표정하게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대문을 들어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시댁의 모든 것들이 자세히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시댁은 2층으로 된 집 아래층을 전세로 살고 있는데 방이 세 개였다.

대문에서 서너 발 들어서면 5개의 계단이 있는 70년대에 집장사들이 지은 집이었다.

현관을 들어가면 정면으로 벽에 붙박이장이 있는데 1m 정도의 길이에 두 칸짜리 붙박이에 누구도 보지 않을 낡은 책들이 꽂혀있다 그 책중에 꿈풀이책이 꿈툴거리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마룻바닥은 정사각형 한 변이 15cm 정도 되는 무늬목을 돌리듯 번갈아가며  놓인 무늬에 차디차고, 천정은 체리색 루바로 되어있어 온통집안이 체리색으로 어둡고 침침해 보였다.

시어머니가 사용하는 방은 10자 정도의 장롱이 들어갈만한 크기인데 장롱은 없고 조그만 서랍장에 TV를 올려놓고 시어머니용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 한 개가 있는 벽에는 뭔가가 주렁주렁 걸려있는  방의 가운데는 오래된 카시미론 이불이 늘 깔려있다.  

중간방 하나는 조그만 장롱과 화장대가 있는데 옷장을 열어 봤더니 남성양복이 몇 벌 걸려있고 화장대 앞에 둥근 바구니에 기초화장품은 없고 색조화장품 몇 개와 남성용 스킨로션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부엌 수납장 위에는 커다란 꿀병에 누런 액체 속에 계란이 들어있는 병이 5개 정도 놓여있고 무엇인가 담아 놓은 병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

화장실에는 변기와 세탁기가 있는데 하얀 타일인 벽에 못이 몇 개 박혀있고 누런 수건이 두 개 걸려있고 벽에 걸린 거울 앞에는 남자용 까만 빗이 한 개 놓여있다. 화장실바닥은 한 변이 10cm 정도 되는 정사각형 벽돌색  타일이 붙여져 있고 벽에 붙은 수도꼭지 아래는 오래된 세숫대야가 놓여있고 문 앞에는  낡고 곰팡이핀 청색 슬리퍼가 놓여있다.

화장실문은 갈색인데  문위에 네모난 불투명한 유리가 달려있다.

또 하나의 방은 성질 더러운 둘째 시누의 방인데 낡은 책상 한 개와 한 사람 누울 정도의 크기의 방인데 책상반대쪽에 5단짜리 서랍장이 있고 그위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올려져 있다.

그 방은 부엌과 연결이 되어있다.

부엌싱크대는 문이 옥색으로 되어있는 낡은 싱크대로 문이 약간씩 서로 어그러져있다 마루가 큰방을 끼고 ㄱ자로 되어있어서 부엌은 작은 편이다 싱크대도 볼이 하나짜리이고 오른쪽에 가스레인지가 있고 왼쪽에는 그릇 씻어 얹는 식기건조망이 있다.


시아버지는 머리가 대머리인데 왼쪽머리에 머릿기름을 잔뜩 발라서 오른쪽으로 넘겨. 빠진 머리를 감추고 작은 키에 배가 불룩 나와있고 북한사투리를 사용하며 의상은 조끼러닝에 베이지색 낡은 반바지를 입고 있는 60대 후반 노인이다.

시어머니는 염색을 해서 까만 곱슬머리에 인상을 너무 찌푸려 얼굴에 빨래판처럼 촘촘히 주름이 가득하고 손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스테로이드제를 오래 복용해서 손이 거무죽죽하고 살이 없는 힘없는 손에 핑크색 V라인 목이 늘어진 반팔티에 헐렁한 검은색 바지를 입고 언제 어디서 든 앉으면 거무스름한 손으로 뜸자국이 빽빽한 무릎을 아래위로 천천히 쓰다듬고 앉아있는 50대 후반이다.

손아래 시누 두 명은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카라 없는 헐렁한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겨울철 복어 같은 종아리를 일자다리로 만든다고 맥주병으로 열심히 밀어대며 미래에 어떤 차를 살건지 서로 다투듯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시어머니는 아까부터 곁눈질로 예의 주시하며 바라보고 있다. 그러더니 그 눈은 내 손가락에 낀 묵주반지에  고정되어 한참을 보더니 결심이리도한 듯

"우리 집은 불교집안이다. 너만 절에 같이 다니면 우집안은 통일이 된다. 무슨 뜻인 줄 알겠니? “

하고 TV에 눈을 고정시키고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TV를 보고 있다.

나도 아무 말도 안 들은 듯 무표정하게 애꿎은 TV만 보는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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