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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이 Dec 18. 2023

백두대간 남덕유산

바닷속과 겨울왕국을 경험한 날

눈꽃이 아름다운 겨울왕국을 찾아 떠났다. 

백두대간을 하는 맛은 빠지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해진날을 꼭 가는 것이 좋다.

한 달에 두 번 가는데 한번 빠지면 체력도 저하되어 다음 산행에 많이 힘들어진다.

12월 16일은 15일 전부터 일기예보를 보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으면 아름다운 상고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제발 날씨가 좋길 바라며 일기예보를 열어봤을 때 해 그림이 나왔다. 기분이 너무 좋아 그 순간부터 산에 올라갈 마음으로 흥분되기 시작했다.

다음날 일기예보는 비소식이다. 2주일간 하루에도 몇 번씩 일기예보를 보면서 겨울산행에 비가 온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백두대간을 처음 할 때 지리산에서 햇볕이 쨍쨍하던 산에 하늘이 흐리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 속을 무려 6시간이나 걸었다. 그래서 이젠 비만 온다고 해도 기분이 푹 가라앉는다.

비, 흐림, 강풍, 눈으로 일기예보는 수시로 바뀌었다. 

산악회 문자

산악회 대장한테서 전날 받은 문자를 보면서 짝꿍이 전화를 했다.

"가요. 말아요."

"가야지 백두대간 산행인데 날씨구분할 수 없지."

"알았어요. 짐 싸야겠네요."

내일 보자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겨울등산의 준비물(스택, 아이젠, 스피치. 워머, 모자, 장갑, 따뜻한 보온옷)도 많은 데 강추위라는 문자멧시지는 더욱 긴장하게 했다. 짐을 다 싸놓고 자졍이 넘어서 잠시 눈을 붙인 듯 4시에 타이머가 울려서 벌떡 일어났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분 간격으로 타이머를 맞춰놓고 세수하고 아침 먹으며 옷 입고, 4시 25분 차를 타러 나가는데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래도 날씨가 따듯해서 좋았는데 우산이 나하산처럼 뒤집어졌다. 

차를 타고 달리는 도로는 가는 구간마다 비와 눈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 같다.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도착한 육십령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육십령



준비하고 단체 사진 찍고 우리 일행은 남덕유산을 향해서 올라갔다. 

다행히 바람은 심하게 불었지만 눈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선두에서 열심히 걷고 있는데 뒤에 오던 일행이 내 아이젠을 유심히 보았는지 앞뒤를 바꿔서 착용했다고 해서 다시 풀어서 착용하고 보니까 후미까지 다 올라가고 나만 동 그만 히 남아 있었다.

열심히 쫓아갔다. 

가다 바위구간에서 올라가는데 정체가 되었다.

겨우 따라잡나 했더니 먼저 올라간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게 가버렸다. 

내 앞에 두 명과 함께 올라가면서 아이젠에 눈이 달라붙어서 걷기가 힘들어 조금조금 앞사람과 멀어지고 있었다.

가다 보니 또 나 혼자였다.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서 워머로 눈만 내놓고 바람막이 모자를 썼다

바람에 모자에서 삐져나온 머리가 금방 하얗게 얼어버렸다.

눈 쌓인 산을 사진 찍으려고 장갑을 벗었는데 손가락이 얼어 터질 것 같았다.


백두대간 남덕유산 상고대

할미봉을 지나고 서봉에 올라섰을 때는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추락주위라고 쓰인 곳에서는 바람에 내가 난간으로 밀려서 나는 난간을 잡고 한 손은 스틱으로 의지를 했다. 

농디 대장님이 함께 해줘서 마음은 편했지만 함께 걷는 길의 상고대가 너무 멋있었다. 함께 사진도 찍으며 상고대를 보면서 우리가 바닷속에 들어와 산호초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조금 가더니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점심을 먹으라고 하며 후미랑 같이 가자고 하는데 나는 빨리 올라가겠다고 혼자서 올라갔다.



백두대간길 남덕유산 상고대

혼자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게 되었다. 남덕유산은 1507m로 산을 올라가면 갈수록 상고대가 어마무시했다. 이제부터는 겨울왕국에 들어온 작은 사람에 불과했다. 꽁꽁 어러 붙은 나뭇잎이 눈 위에 떨어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봤는데 꽃도 꽁꽁 얼어있고 풀과 나무들까지도 꽁꽁 얼어붙어있었다. 혼자 걷는 길이 순간 무서워졌다. 나도 꽁꽁 얼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덕유산 팻말을 보고 부지런히 걸었다.

습관처럼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한다.

내 앞에 사람이 있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입니다."

" 어디에서 오셨어요?"

하고 물어봤더니 같은 산악회다. 왜 가던 길을 도로 내려오냐고 물어보고, 대답도 듣기 전에  아침에 차에서 대장이 이야기해 준 남덕유산은 백두대간길이 아니어서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말이 기억이 났다.



남덕유산 정상

남덕유산 정상에 올라갔다. 보이지 않던 민건대장님께서 바람을 피해 서있다. 우리 회원들이 올라오면 사진을 찍어주시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동영상을 한컷 찍고 대장님이 춥다고 얼른 내려가라고 해서 부지런히 내려오는데 상고대가 너무 멋있어 잠시 겨울왕국에서 정신을 내려놓고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걸어갔다.



남덕유산 이정표



남덕유산 상고대



남덕유산 상고대



한참을 겨울왕국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상고대를 보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린산악회에서 왔다는 두 남자분이 빨리 가야 한다며 뛰기 시작했다. 후미를 기다리던 나도 눈길을 뛰기 시작했다. 뛰다 보니 내 짝이 후미로 오고 있었는데 앞에 가고 있었다. 웬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정상에 안 올라가고 샛길로 왔다고 한다. 수간 눈앞이 아찔했다. 후미가 샛길로 갔다면 나는 선두를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정표


아니나 다를까 월성재에서 대장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내려갈 것인가 삿갓대로 올라갔다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지으라고 하는데 40:60의 마음으로 삿갓대를 향해서 걸어갔다. 곧 민건대장님이 뒤따라오셨다. 콜라를 마시라고 따주셨는데 조금 마셨는데도 몸에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부터는 시간상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두에서 꼴찌로 내려갈 것이 뻔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었다. 삿갓대를 0.3km 남겨놓고 올라가지 말고 그냥 가자고 했다. 대장님께서 삿갓대 올라갔었냐고 물어봐서 한 번도 못 갔다고 했더니 이곳은 또 올라오기 힘든 곳이라며 늦어도 올라갔다 가자고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신이 나서 올라갔다. 대장님은 사진을 찍어주고 내려가는 내내 대장님께서 조심히 사고안나게 가라고 하시며 얼마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셨는지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편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삿갓대피소에 도착하고도 물이 철철 흐르는 골짜기를 지나 내려오는데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숲가에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추어 서서'가 생각났다. 내가 걷고 있는 숲이 그 시의 배경과도 같다고 생각을 했다. 얼어붙지 않은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고는 있지만 낙엽송이 우거진 어느 농가의 숲길을 걸으며 어디에선가 조랑말의 방울 소리가 울릴 것 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눈송이는 더 커져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눈이 무릎까지 차던 길로 학교 가던 어린 초등학생의 모습도, 눈이 신발에 들어가 발이 다 젖었던 어린 시절 난롯불에 양말이 다 마를 때쯤엔 다시 눈 쌓인 십리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꼬마의 모습, 생각에 젖어있을 때 대장님께서 조금 부지런히 가자고 해서 생각에서 깨어나 우리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차 안에서 대장님께서 어느 팀은 남덕유산이 9시에 통제가 되어 산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다행히 통제전에 도착해서 험한 눈길이었지만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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