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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이 Mar 20. 2024

우유를 보며 떠오른 기억

IMF가 남긴 날들

  우유가 먹기 싫어서 학교에서 안 먹고 가지고 왔다며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는 학생을 보는 순간 내 머리에는 오래된 추억이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파고 들어왔다.

  초등 2학년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

딸은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열더니 우유를 두 개 꺼내놨다.

“오늘은 왜 우유를 가지고 왔니, 그것도 두 개씩이나?”

하고 물어봤더니 딸의 눈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고 나를 바라보며

“엄마, 아빠 회사 그만두신 거 맞지요?”

“응, 근데 왜?”

“엄마, 담임선생님이 아빠회사 그만둔 사람 손들어보라고 해서 손을 들었더니 손 든 사람 나오라 해서 나갔는데 우유를 하나씩 더 줬어요. 근데 엄마 나 너무 창피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엉엉 우는 딸을 꼭 끌어안고 한참을 말없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눈물을 그친 딸에게 반에서 손든 친구들이 누구누구인가 물어봤는데 내가 잘 알고 있는 민우라는 아이가 있었다. 마침 그날은 학급어머니회의가 있는 날이어서 학교에 가게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담임선생님께 딸이 우유 받고 보인 반응에 대해 말씀드리며 내일부터는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집에 들러 딸을 데리고 민우네 집에 놀러 갔다. 민우엄마한테 우리 딸이 우유 받고 마음이 많이 아파했다고 했더니. 민우엄마는

“언니, 우리 민우는 아직 어린가 봐 뛰어오면서 우유 한 개 더 줬다고 엄청 좋아했어. 오늘부터 매일 선생님이 우유를 두 개씩 준다고 했다며, 너무 좋지? 해서 난 눈물이 났어."

민우 엄마와 우유이야기며 학교에서 회의한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말하길

"엄마, 담임선생님이 저 보고 하룻밤사이에 많이 큰 것 같데요."

하며 오늘부터 우유를 안 주신다고 했다고 하며 딸아이는 

"어휴."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며 뭔가 큰일 날뻔했다는 시늉을 했다.

  IMF가 시작되면서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는 감원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와서 

"여보, 이번에 우리 회사 감원 있데, 며칠에 발표한데."

하고 말하면 남편한테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남편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고 별일 없을 것이라고 진정을 시키면서 나는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회사 감원이 끝났다고 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날부터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위는 아프다 못해 쓰리고 위가 조금 나아지려면 다시 긴장을 해야 하는 이런 일을 몇 번을 반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고 할까 나는 깜짝 놀랐다.

"여보, 나 회사에서 감원됐어."

예기도 없이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남편이 다니는 공장에서는 감원이 없다고 했는데 회사를 그만두다니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남편은 회사에서 구매과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공장장이 회사가 부도나면서 부정행위를 하려고 하는 것을 막았더니 본사에 올려서 남편만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본사 인사부에 있는 남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한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그래서 남편과 나눈 이야기를 해줬다. 그 후 몇 달간의 시간이 흐르고 공장장을 회사에서 감원시키고 난 후 남편에게 회사에 다시 복직하길 권했지만 남편은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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