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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가죽장갑

by 해윤이

20년도 전에 남편한테 선물 받은 가죽장갑이 있었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갑자기 눈보라가 치는 바람에 가죽장갑을 끼고 나갔다.

다른 때 같으면 걸어서 전철역까지 가는데, 눈보라 덕분에 가죽장갑을 끼고 버스를 탔다

내 옆에 앉은 여자가 핸드폰을 계속 보고 있는데, 내 폰에서 카톡음이 크게 들려왔다. 그리 중요한 카톡이 올리 없어서 차 안에서는 안 본다 그런데 옆에서 폰을 보고 있어서인지 나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여는데 장갑을 벗어야 했다. 나는 장갑을 벗어서 무릎 위에 얹고 핸드폰을 열어서 카톡을 보고 넣으려다 문자가 왔다는 표시 때문에 다시 문자를 보고 그러다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는 것을 옆에 있는 여자가 일어나서 알았다. 순간 나도 내려야지 하고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카드를 꺼내서 찍고 내렸다. 전철역에 도착해서 손에 장갑이 끼워지지 않은 것을 보았다. 가방을 열어 봤는데 가방에도 없었다.

일단 버스는 출발했을 것이고 시간을 기억하니 다음날 연락을 해봐야지 하고 나는 서울로 올라가는 전철을 탔다. 그런데 계속 장갑생각이 났다.


아직 쓸만한데 하는 긍정적인 생각과 쓸 만큼 썼어하는 부정적인 생각들 사이에서 어떻게 할까를 순간순간 생각하게 되었다.

가죽장갑은 손이 따듯하지 않아서 자주 끼고 다니는 장갑이 아니어서 새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장갑이다. 나는 가끔 이 가죽장갑을 끼고 다닌다. 없어져도 아쉬울 것은 없다. 남편이 사준 것에 의미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친구들을 만나서는 장갑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렸다.


친구들과 헤어져서 돌아오는데 날씨가 너무 추웠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장갑생각이 또 났다. 집에 돌아와 장갑 잃어버린 이야기를 남편한테 하고 내일 찾아봐야지 하고 잊고 있었다.

다음날 오후가 되어갈 때쯤 장갑생각이 났다. 그래서 버스회사에 연락을 했다. 전화번호를 알려 줘서 분실물 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하다 그 버스를 타고 기사한테 물어보면 될 것 같았다. 나는 버스를 타서 운전기사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가 가려던 방향이 아니라 반대방향 광교산 종점에 분실물센터에 가져다 놓거나 저녁에 차고지 분실물 센터에 있다며 반대쪽으로 가서 내려서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반대편에서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맨뒤에 앉아서 차창을 보며 갔다. 종점이 되기 전에 버스 두대와 컨테이너 박스 같은 것이 있는 곳이 있었다. 고장 난 버스에 카페를 차렸나 하고 지나쳤다. 종점에서 운전가사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일단 카드를 찍으라고 했다. 버스는 완료버튼을 누른 후 나를 태우고 버스 쉬는 곳으로 갔다. 아까본 고장 난 버스와 컨테이너인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버스들이 쉬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도 장갑은 없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산을 오르기 위해 걸어갔다. 내복장이 우스웠다. 코트에 핸드백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광교산에서 계단이 제일 많은 토끼재로 올라갔다. 토끼재에서 6년 전 미끄러져서 손목이 부려졌었던 생각이 났다. 눈이 초입에는 없었는데 가면 갈수록 많았다. 아이젠도 스틱도 없이 눈 있는 산에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올라가는 내가 웃겼다. 산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430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에서 눈이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한 명 있었고, 계단을 올라가 잠시 숨을 고르는데 아이젠에 스틱까지 완전무장을 한 할아버지 한분이 휙 지나갔다. 다시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젊은 청년이 하얀 오리털 긴 코트를 입고 미끄러지며 올라오고 있었다.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며 미끄러지는 불편을 호소하듯 바라본다. 나는 조심조심 산을 내려왔다.


버스종점까지 다시 내려와서 버스를 탔다. 다시 반대쪽 분실물 센터에 전화를 했다. 전화번호가 그 번호가 아니라며 적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적을 것은 없지만 그냥 불러달라고 했다. 집중해서 들어서인지 전화번호를 또렷이 기억했다. 분실물센터에서 언제 잃어버렸냐고 물어보더니 가죽장갑은 없다고 했다.


버스를 타는 사람 중에 부자는 거의 없다. 어쩌면 가죽장갑을 한 번도 못 껴본 사람이 가져갔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장갑을 가져간 사람에게 선물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 쓸만한 장갑이어서 그 장갑을 가져간 사람에게 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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