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산의 눈보라 속 칼바람

by 해윤이

지난해 눈이 유난히 많이 왔을 때, 우리는 남덕유산으로 향했다.
육십령에서부터 폭설이 이어지는 이른 시각 우리 일행은 산으로 오르는 사이 국립공원은 결국 문을 닫았다. 더 이상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고, 남덕유산에는 우리 팀만 남았다.


남덕유산 상고대



칼바람이 능선을 휘몰아쳤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공기가 차갑게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나무마다 상고대가 피어 있었고, 산은 온통 하얀 조각처럼 굳어 있었다. 사람 하나 없는 겨울 산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마저 칼바람은 삼켜버릴 것 같았다.

상고대는 너무 아름다웠다. 겨울왕국에 들어온 것 같았다. 꽃들도, 나무도 마법에 걸리냥 그대로 서있었다.
나는 상고대가 부드러운 눈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가까이 다가가 머리로 툭 쳐봤다. 그 순간 알았다. 상고대는 눈이 아니었다. 얼음처럼 단단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상고대에 부딪힌 머리가 아팠다.

남덕유산 정상석 앞에 섰을 때, 바람은 진짜 칼바람이었다.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손은 얼어 터지는 줄 알았다. 겨울 산에서는 준비를 해도 자연이 한 수 위라는 걸, 그날 다시 알았다.



삿갓봉



월성재에서 내려가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삿갓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월성재를 지나 삿갓봉에 올랐고, 삿갓재대피소 쪽으로 내려오던 길에서 ‘통행금지’라고 적힌 표지판을 마주했다. 그 글자가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이번 산행은 육십령에서 시작해 할미봉과 서봉을 지나 남덕유산을 넘고, 월성재와 삿갓봉을 거쳐 삿갓재대피소에서 황점마을로 내려오는 숲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숲을 바라보며 내려오는 순간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가 생각났다.


눈 내리던 숲가

눈 내리던 숲가에 다시 가고 싶다. 그 먼 옛날 시인의 시어들을 다시 듣고 싶다.


스틱, 스패츠, 아이젠, 장갑, 모자, 등산화, 간식까지 챙겼지만 남덕유산의 겨울은 그 모든 준비를 시험하듯 매서웠다. 나는 그 산행 후 다리에 동상이 걸렸다. 매일 일이 끝나면 싸우나를 가서 다리에 박힌 얼음을 빼냈다.

그래서일까, 그날의 남덕유산은 오래 남았다.
우리 팀밖에 없어서 한산했던 산, 칼바람, 상고대의 아름다움, 그리고 내가 했던 작은 착각까지. 아름다운 것은 늘 부드러울 거라 믿었던 그 순간이, 겨울 산에서는 가장 단단한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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