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일.
시간에 맞춰 시니어클럽에 갔다.
지난번 상담하던 자리는 온데간데없고
벽면에는 ‘접수처 → 2층’이라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나는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노인 고용 현장이 이렇게 뜨거운 줄은 몰랐다.
마치 내가 처음으로
이 나라의 ‘노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옷을 일부러 잘 차려입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말끔하게 하고 간 내가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공간 전체가 눌린 색감처럼 느껴졌다.
2층에는 긴 복도와 두 개의 강의실이 있었다.
조금 작은 강의실에서는
사람들이 원서를 쓰고 있었다.
주민등록번호,
학력,
성명,
주소,
전화번호,
그리고 하고 싶은 일.
종이 위에는
사람들의 인생이 줄줄이 적히고 있었다.
나는 먼저
이곳의 분위기에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서 접수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돼요?”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이는 임대사업을 한다고 했다.
“사업자 있으세요?”
“네.”
“소득은요?”
“소득이 별로 없어서 왔어요.”
소득이 얼마인지 묻고
그대로 서류에 적으라고 했다.
그 순간 알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단순히 ‘일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일을 하고 있어도
살아가기엔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 있었다.
글씨를 잘 못 쓴다는 할머니 옆에서
상담사가 대신 글을 써주고 있었다.
“학력은요?”
“중졸이에요.”
잠시 후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아니…
서류에는 국민학교로 써야겠네요.”
밖에서 말하는 학력과
종이에 적히는 학력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
말로만 듣던 이야기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
마음이 씁쓸했다.
시간이 흘러 늙어도
학력에 대한 비밀은
끝까지 따라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스쳤다.
그 질문은
할머니가 아니라
내 세대를 향해 돌아왔다.
옆에 앉아 있던
점잖아 보이던 남성분이
호출을 받아 나가자
누군가가 말했다.
“저분, 엄청 부자래요.
의료보험료가 너무 많이 나와서
여기서 일하면 덜 낸다고 해서 왔다네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도가 사람들을
이런 선택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여성은
남편과 함께 접수하러 왔다고 했다.
남편 연금이 300만 원이 넘고
본인도 연금이 있지만
너무 심심해서 나왔다고 했다.
시니어클럽에서는
접수된 서류를 동사무소로 넘긴다고 했다.
그곳에서 소득과 재산을 관리한다고 했다.
자격증은 두 개까지 인정되고
관련 경력이나 재능이 있으면
우선 채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많은 노인들은 말했다.
“시간도 잘 가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서 좋아요.”
“무엇보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좋아서
다시 신청하러 왔어요.”
그 와중에도
서로 순번을 알려주고
서류를 챙겨주는 손길이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
내 차례가 되었다.
넓은 강당에는
여러 명의 심사위원이 뜨문뜨문 둘러앉아 있었고
앞에 앉은 시니어들과
어떤 일을 맡기면 잘할 수 있을지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에게도 물었다.
“어떤 일을 하셨어요?”
하지만
내가 해온 일은
밖에서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브런치 작가 화면을 열어 보여주고
블로그, 유튜브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디지털배움터에서 배운 것들을 설명했다.
그때는
디지털배움터 수료증을
아직 출력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더니
나중에 면접 보러 올 때
디지털배움터 수료증을 가지고 올 수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집에서 기다리시면
면접 과목을 알려드리겠다”라고 했다.
나는
소비자피해지킴이 관련 업무나
노인들에게 스마트폰을 가르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인정에서
노인들에게 스마트폰을 알려주는 모습을 떠올리니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막막하기도 했다.
며칠 뒤
시니어클럽에서 문자가 왔다.
소비자피해지킴이 관련 업무 시험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개인 노트북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노트북이 없을 시 불이익은
본인이 감수하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맥북을 사용하는데.
맥북에는 한글이 깔려 있지 않아
한 달 사용 가능한 한글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그런데
예전에 쓰던 한글과
새로 설치한 한글버전은
많이 달랐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정해진 틀 안에서 쓰면 됐지만
컴퓨터 활용 수준의 한글은
오래 다뤄보지 않아
불안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나는 한글 사용법을
다시 익히고 있었다.
접수는 끝났지만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