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가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아직 햇볕이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공기는 차가웠고, 길 위에는 하루가 막 시작되는 기척만 희미하게 떠돌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노점상하시는 할머니 두 분이 물건을 펼 지고 계셨다.
작은 돗자리 위에 땅콩이며 채소며 이것저것을 가지런히 놓는 손길이 느렸지만 단정했다. 오래 반복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나는 등산가방을 메고 버스정류장에 햇볕이 따스한 곳 할머니들 앞에 떨어져 서있었다.
한 할머니가 옆에 할머니 땅콩봉지를 들고 물으셨다.
"이건 얼마 받아?"
" 응, 그건 덤으로 줄 거야."
"덤으로 주긴 왜 넘으로 줘, 5,000원은 받을 수 있는데."
"그러던가."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물건 하나에도 값을 매겨야 하는 삶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끼니가 될지도 모를 돈.
잠시 후 한 할머니가 약봉지를 꺼냈다.
투명한 봉지 안에서 유산균 통이 달그락거렸다.
“무슨 약을 먹어?”
“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옆 이가 흔들린대. 두 달은 지켜보자네.”
“아픈데 뭘 지켜봐. 그냥 뽑아버리지.”
“지난번에 어금니 뽑아봤더니 뿌리가 다 썩어 있었어. 그게 얼마나 아픈지… 이가 아프면 정신도 못 차려.”
아픔을 말하는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오래 귀에 남았다.
그러다 할머니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근데 하얀 반코트 입고 빨간 립스틱 바르고 다니는 여자 알지? 그 여자가 만 원 외상으로 가져가고 아직도 안 갚아.”
“그래서 나는 외상은 안 줘.”
만 원.
누군가에게는 커피 몇 잔 값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 장사의 결과일 돈.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물건 살 것처럼 만지작거리더니 무청시래기를 그냥 가져가 버렸어.”
“왜 남의 물건을 훔쳐가.”
“얼마나 없으면 그러겠어 싶다가도…”
“훔치는 건 버릇이여.”
“그래도 집에 가서 ‘이게 뭐라고 내가 가져왔나’ 하고 후회하지 않겠어?”
화를 내면서도 끝내 연민을 내려놓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살아온 시간이 긴 사람들은 분노보다 이해에 먼저 닿는 법인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탈 버스가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천천히 다가오는 버스를 보면서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길가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그분들에게 만 원은 작지 않을 것이다.
무청시래기 한 단에도 하루의 시간이 묶여 있을 것이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지만 자꾸 정류장 쪽이 떠올랐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오는 걸까.
그리고 또 누군가는 얼마나 많은 것을 지켜내며 하루를 버티고 있을까.
그날 아침,
햇볕보다 먼저 마음이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