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넘어지며 배우는 길
추풍령 – 사기점고개 – 작잠고개 – 용문산 – 국수봉 – 큰재
이번 산행도 조출이라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4시 20분에 출발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꾸물거리다 보니 버스 시간에 늦게 도착했다.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산행 메시지를 확인했다.
기온은 영하 9도에서 영상 6도, 바람은 초속 5m로 강풍이 예상된다고 했다.
바람막이와 아이젠을 준비하라는 안내도 있었다.
추풍령에 내렸을 때의 기온은 봄을 느낄 만큼 포근했다.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고 보니 대원들의 복장도 가벼워 보였다.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해 몇 미터쯤 갔을까.
코가 베일 듯 시리고 손이 아려 더 걸을 수가 없어 대열 옆으로 비켜섰다.
마스크로 코를 가리고 보온 장갑을 끼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간길을 걷는 사람들은 걸음이 빠르다.
조금만 꾸물거려도 금세 100m쯤 뒤처진다.
한 번 뒤처지면 대열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혼자가 된다.
그래서 나는 혼자 걷기로 했다.
혼자 걷는 길은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나무의 수액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음을
꽃눈과 잎눈이 보여주고 있었다.
발이 닿는 산길도 폭신하게 느껴졌다.
곧 후미가 따라왔다.
후미에는 두 명이 있었는데 대장님이 뒤에 바싹 붙어 개인 과외를 하듯 지도하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과 멀리서 들려오는 강풍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통증이 점점 내려가 발목 주변이 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등산화 끈을 다시 매려고 길을 멈추었다.
끈을 풀다 보니 새로 산 등산화의 뒤쪽 접히는 부분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끈을 다시 매는 동안 함께 걷던 일행은 이미 산중턱까지 올라고 있었다.
발목이 좋지 않아 빨리 걸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리는 다시 괜찮아졌다.
평평한 길에서는 뛰고, 비탈길에서는 숨을 헐떡이며 일행을 따라갔더니
그들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었다.
나도 앉아서 부리나케 아이젠을 착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벌써 착용을 마치고 먼저 내려가 버렸다.
아이젠을 신고 몇 발짝을 걸었을 때
눈이 쌓인 비탈길에 강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새로 산 등산화에 새 아이젠을 착용하고
10m도 채 가지 못해 눈 위에 큰 대자로 넘어졌다.
파란 고어텍스 바람막이 모자가 머리를 덮어 버렸다.
스틱은 앞으로 내동댕이져지고 두 발은 묶인 듯 붙어 꿈쩍할 수 없었다.
아이처럼 눈 위에 엎드린 채 잠시 그대로 있었다.
뒤따라오던 도우너가 놀라 소리쳤다.
“다친 데 없어?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이상 없음을 확인한 뒤
아이젠을 풀고 등산화를 다시 정리해 주었다.
이젠 넘어질까 불안하다고 했더니
대장님은 다리를 조금 벌리고 걸으라고 했다.
일자걸음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정거리며 걷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웃겼다.
수많은 눈길을 걸어도 넘어지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아이젠의 핀이 등산화 끈고리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새 장비가 더 안전할 거라 생각해
스패츠를 생략한 것이 실수였다.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좋은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넘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거센 바람 속 눈길을 뛰듯 빠르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