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백두대간이고, 그게 인생이다

by 해윤이


산행코스: 괘방령 - 가성산 - 눌의산 - 추풍령

10.4km
들머리 영하 7도, 낮 기온 영상 5도, 바람 3m.


새벽 다섯 시,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은 아직 겨울이었다.
뺨에 와닿는 바람이 시렸다.
괘방령에서 내렸을 때도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낮 기온이 영상이라는 소식에 마음이 놓였다.
새로 산 등산화, 로바 카미노 에버를 신고 걷는 날이기도 했다.
새 신을 신고 길을 나서는 기분은 언제나 설렌다.


괘방령은 횡간과 김천을 잇는 지방도다.
저지대의 산은 소나무와 참나무, 잡목이 섞인 평범한 풍경이었다.


장군봉에 도착했을 때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다.
투명비닐 텐트 안에서 식사를 하며 배낭을 밖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팀.
우습기도 했고, 따뜻한 텐트 안에서 밥을 먹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가성산과 눌의산은 높이차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 고도 차는 430m나 된다.
짧아 보여도 길은 만만치 않았다.


오르막에서는 숨이 찼고
내리막은 응달이라 눈과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군봉까지 신나게 오르던 사람들도 더워서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짧은 구간이라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가파른 오르막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백두대간 길에는 쉬운 구간이 단 하나도 없다.


백두대간길


누군가 내게 백두대간이 무엇과 닮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인생길 같다고 말했다.


어떤 대원은 이렇게 말했다.
“월급 받고 퇴직해 연금 받으며 살아온 인생보다 더 힘들다.”


하지만 내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IMF가 삶을 흔들었고
코로나19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법 앞에서 또 한 번 넘어졌다.


좋은 길 같다가도
갑자기 경사가 심해지고
너덜길을 긴장하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열리며 조망이 나타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는
내가 그 거친 풍경 속에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봄의 새싹이 햇살을 받아 반짝일 때의 연둣빛,

햇살에 반짝일 때의 연둣빛은

빛을 투과하는 것처럼 더 아름답다.


진달래꽃길을 걷던 기억도 있다.


어느 날은 밤새 진눈깨비를 맞으며
몸을 끌다시피 오르다 정상에 닿았다.
그 순간, 하늘이 열렸다.


햇살이 쏟아지고
나뭇가지 끝 물방울들이 반짝였다.


앞서간 사람도 보지 못했고

카메라 렌즈에도 담기지 않았다.
영원히 가슴에만 남을 빛이었다.


그 순간,
아팠던 다리가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좋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큰 산이 앞을 막으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을 내딛는다.


허리가 끊어질 듯해도
이를 악물고 걷는다.


그게 백두대간이고,
그게 인생이다.


이 길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다리의 근육이 단단해지듯
내 삶도 조금씩 다져졌다.


추풍령면의 조망

눌의산 정상에서는 추풍령면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하산길은 쉽지 않았다.
눈이 덜 녹은 비탈에서는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했다.


겨울이 끝났다고 웃옷을 벗었다가
다시 옷을 여미고 아이젠을 착용했다.


산은 늘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농가를 가로질러 내려오는 길은 완연한 봄이었다.
산 위에서 겨울을 걷고
산 아래에서 봄을 만났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계절을
백두대간 위에서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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