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25분, 진고개에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손잡이까지 눈이 차 있었다.
초행인 나는 그곳이 계단인지도 몰랐다.
그때 팀장이 스틱으로 계단 난간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손잡인데, 눈이 여기까지 찼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 산행이 쉽지 않겠다는 걸 직감했다.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왔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쌓였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중부 이남에는 눈이 없던 때였다. 같은 겨울 아래에서도 계절은 이렇게 달랐다.
노인봉 휴게소까지는 보통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써야 했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발을 빼내는 일만으로도 숨이 찼다.
처음에는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깨달았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발자국 눈 위로 올라섰다.
밤새 얼어붙은 눈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몸이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길이 더 빨랐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청일님도 같은 방법으로 걷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뒤를 따르던 누군가는 눈 속에 깊이 빠졌고,
다리를 꺼내다 허리를 삐끗해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노인봉을 지나 비탐방구역에 들어서자 길도, 시그널 리본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방향을 잡다 낭떠러지 앞에서 멈춰 서기도 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살아오면서도 이런 길 위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변호사 사무실의 훈훈한 공기가 생각났다.
변호가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차근히 들어주며 말했다.
“선생님은 잘못이 없어요. 판사님이 들으시면 상을 내릴 겁니다.
판사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 들어주실 때 사실대로 잘 말하세요.
그리고, 합의는 절대로 하지 마세요.
합의를 하면 선생님이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니까요.”
그 말을 듣자 마음의 흔들림이 가라앉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길을 찾는 일이었다.
우왕좌왕하던 사이 어둠이 조금씩 물러났다.
골짜기를 내려갈 때는 미끄럼을 타듯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서 터지는 웃음과 짧은 비명이 긴장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날이 밝자 햇볕이 내리쬐았다.
눈이 녹으며 발이 더 쉽게 빠졌다.
우리는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며 힘겹게 올라갔다.
그리고 숲을 벗어나는 순간—
끝없이 넓은 눈밭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누군가는 눈 위에 몸을 던졌고,
누군가는 어린아이처럼 뛰었다.
고생 끝에 만난 풍경은 늘 말을 잃게 만든다.
표지판에는 ‘소황병산’이라 적혀 있었다.
이탄습지 위에 눈이 운동장처럼 펼쳐져 있었다.
사방의 산세는 고요했고,
그 풍경 속에 서 있자 마음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아직 남아 있었다.
대관령으로 향하는 길에서 날씨는 점점 포근해졌다.
햇볕이 내리쬐자 눈은 천천히 녹아 길은 진흙으로 변했다.
오랜 시간 눈길을 걸어온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선자령으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
이상하게도 바람이 없었다.
선자령이라면 늘 거센 바람과 상고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날은 달랐다.
햇볕 속에서 눈이 조용히 녹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자 백패킹을 온 사람들과 눈을 즐기려는 이들이 곳곳에 보였다.
형형색색의 텐트가 늦겨울의 풍경 속에서 작은 점처럼 박혀 있었다.
그 순간, 왜 사람들이 "눈이 오면 선자령이지."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겨울이 끝나갈 때도 이곳에는 마지막 눈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계절과 계절 사이를 걸을 수 있다.
선자령 표지석 앞에 서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긴 눈길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결국 걸어 나왔다.
생각해 보니 삶에서도 그랬다.
길이 보이지 않는 시간은 있었지만, 끝내 지나오지 못한 길은 없었다.
계절은 이미 봄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를 조용히 건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