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항령~삼도봉~우두령
부항령에서 올라가는 길은
입춘을 하루 앞둔 탓인지
눈이 거의 녹아 있었다.
그날의 구간은
부항령에서 출발해
박석산을 지나 삼도봉,
삼미골재와 밀목령을 넘고
화주봉을 거쳐 우두령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하루에 끝내기엔 결코 가볍지 않은 코스였다.
겨울산을 걷다 눈이 녹아 있으니
오히려 더 질척거리고
살짝살짝 미끄러웠다.
부항령 표지석 앞 의자에 앉아
등산화와 아이젠을 다시 착용했다.
그런데 내 짝, 도우너가 보이지 않았다.
후미도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부지런히 아이젠을 착용하고 뒤따라 나섰다.
앞에도, 뒤에도 도우너는 보이지 않았다.
‘선두를 따라갔나 보다.’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걸었다.
눈이 녹아 낙엽이 깔린 길은 푹신했지만
문제는 앞사람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혼자 걷고 있었다.
앞뒤에서 보이던 헤드랜턴 불빛을
위안 삼아 걷고 또 걸었다.
산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다시 눈이 많아졌고
그제야 발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산 모퉁이를 돌며
선두와 후미의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호랑이가 나오면 어쩌지.’
아니야, 이 산엔 호랑이는 멸종됐지.
그럼 멧돼지가 나오면 어쩌지.
혼자 그런 상상을 하며
혹시 멧돼지 떼가 덤비면 어떻게 하지,
스틱을 휘두르는 연습까지 하며
온 세상이 하얀
눈 위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가방을 잡아당겼다.
등골이 오싹했다.
“놔!”
큰소리로 외치며 어깨를 확 잡아챘는데
또 잡아당겼다.
“누구야! 놔!”
심장이 쿵 내려앉은 채
돌아가지 않는 목을 천천히 돌려보니
가방끈이 나무 끄트럭에 걸려 있었다.
그제야 힘이 풀리며
어이없게 웃음이 나왔다.
걷다 보니 백수리산 표지석이 보였다.
혼자 셀카를 찍고 있는데
다여니 언니가 따라왔다.
함께 사진을 찍고
서서 간식을 먹자고 했다.
며칠 전 배탈로 병원에서 주사까지 맞았던 나는
먹지 않고 그냥 걷겠다고 했다.
언니는 몸이 그럴 땐 쉬는 게 맞다며
복장과 간식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함께 걷게 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런데 내 헤드랜턴이 목으로 흘러내렸다.
언니는 모자를 벗고 다시 착용하라며
먼저 올라갔다.
그런데,
귀신에 홀린 듯
그 언니의 모습이 이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아무도 없는
눈 쌓인 숲을 혼자 걷고 있었다.
그때,
기억 하나가
눈처럼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목소리,
오해와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그 시절을
아직 다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 밤의 산길처럼
길을 잃은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는 것만.
허벅지가 눈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곳에서
발자국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많은 발자국을 따라갔는데
어느 순간 끊겨버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저쪽에 헤드랜턴 불빛이 보였다.
“대장님, 길이 없어요!”
“이쪽으로 나오세요!”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어느 팀인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우리 팀이었다.
이상한 건
선두가 내 뒤에 있었다는 것이다.
“해윤이 님, 축지법 쓰십니까?
어떻게 우리 앞에 오셨어요?”
그 말에
눈 쌓인 이 숲에서
내가 정말 홀린 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도우너는 후미와 함께 오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줄을 서서
삼도봉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백석산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눈 덮인 나무 계단과 돌계단이 이어졌고
미끄럽고, 힘겨웠다.
삼도봉에 올라서면
삼도를 상징하는
용 세 마리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여의주를 들고 있는
화강암 조형물이 보인다.
전라북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세 도의 경계가 만나는 곳,
그래서 이 산은 삼도봉이라 불린다.
삼도봉을 지나 푯대봉을 향하는 길에서
김미곤 산악회의 유명 인사를 만났다.
훈짱짱님과 기념사진을
친구인 줄 알고 찍어드렸는데,
‘산’ 월간지 인터뷰에서 본 분이라고 했다.
김미곤 대장님은
그 추운 겨울에
백두대간을 백패킹 중이라고 했다.
푯대봉을 오르는 길에는
밧줄을 쥐고 내려와야 하는
무시무시한 구간도 있고
세찬 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물푸레나무 군락지는
눈 내린 숲이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풍경이 아름다우면
뒤에 오는 사람들을 사진 찍어주는 것을 즐겼다.
우두령 가까이 왔을 때
한쪽엔 참나무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에는 넓은 눈 밭이 펼쳐졌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눈 위에 가방을 멘 채
벌렁 누웠다.
이렇게 하얀 눈 위에 누워
추억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우두령을 향해 다시 걸었다.
내려와 시계를 보니,
내가 산속에 머문 시간은 정확히 10시간이었다.
사실 그때는
발뒤꿈치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평소보다 걸음이 더뎠고,
그만큼 산은 내게
조금 더 오래 머물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나는
길 위에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물푸레나무는
야구방망이도 만들고, 가구도 만든다고 한다.
단단하면서도 잘 휘어지는 나무.
이 산에도 그 물푸레나무 숲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이 세 번째 야간산행이었고,
사실 첫 번째부터
발뒤꿈치는 조금씩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신호가
살이 깊게 파이는 상처로 돌아왔다.
그때 왕언니가 말했다.
“산행의 왕도는 따로 없어.
장비가 9고, 체력이 1이야.”
등산화보다 아이젠이 작았던 게
그날의 사고였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나는 등산화와 아이젠을 새로 샀다.
산은 늘,
다음 길을 위해 고치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또 하나,
그날 내가 배운 문장 하나.
“백두대간 야간산행은
혼자서 걸으면 안 된다.”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마음까지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내 열 번째 대간 기록에
이날을 적어 두었다.
길을 잃어도,
산은 나를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