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산 눈꽃산행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는 헤드랜턴을 켜도 앞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속으로 들어서자 머리에 무언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헤드랜턴 불빛에 비친 하늘은 마치 깊은 바다처럼 보였고,
나무들은 마법에 걸린 듯 하얗게 얼어붙은 산호초 같았다.
우리가 지나갈 길은 바닷속 산호초의 동굴처럼 보이며.
다래덩굴에 길게 얼어붙은 상고대는 리본장식을 해 놓은 축제장을 연상시켰다.
그 순간, 나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은 얼마나 신나 할까.
나는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문득, 전혀 다른 기억이 스며들었다.
처음 산에 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내 인생이 가장 흔들리던 시기였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지 1년쯤 지났을 때였고,
검찰에 자료가 올라가 있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확실히 끝나지 않은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혐의 없음이 내려졌어도 마음은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조차 이전처럼 쉽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는 예순넷.
이 나이에 다시 설명해야 하는 삶이 참 낯설고 고단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보다 산으로 향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저 숨 쉬고 걸으면 되는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길 위에 눈이 내려 앞서 가던 사람이 미끄러졌다.
머릿속 생각은 흩어지고
나는 미끄러지지 않으려 온 마음을 집중해 걷기 시작했다.
날이 뿌옇게 밝아오자
대원들은 상고대의 아름다움에 환호성을 질렀다.
“아마 오늘은 우리가 제일 부자일 거야.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못 보는 풍경이거든.
헬기도 못 들고, 휠체어도 올라올 수 없는 곳이지.
건강하게 산을 오를 수 있는 우리만 볼 수 있는 거야.”
누군가는 말했다.
“대덕산 눈꽃축제에 오려면 체력만 있어선 안 돼.
용기도 있어야 해.”
대덕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과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몇 사람뿐이었다.
덕산제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부항령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눈 내리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 몇 장 찍는 사이 함께 가던 대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눈 내리는 숲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장갑은 얼어 손이 시렸고,
아이젠 고무는 발뒤꿈치를 물어뜯듯 아팠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과
고통스러운 몸은 좀처럼 일치하지 않았다.
그때 또,
말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었다.
집에서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공부방 선생님이었다.
교문도, 동료 교사도, 행정실도 없는 교실.
보호막 없는 교육의 자리에서
나는 홀로 그 일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하얗게 내리는 눈은
내 머릿속 깊이 스며들어
기억을 시로 만들고,
조금씩 흐릿하게 지워주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과 바람 때문에 앞사람 발자국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방황할 때,
저 멀리 남자 세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대원들이었다.
부항령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발뒤꿈치는 아팠고 손은 시렸지만,
이곳 풍경은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발이 아픈 것은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속내는
부끄럽고, 두려워 쉽게 꺼낼 수 없다.
그런데 산은,
특히 힘들고 험한 백두대간은
나의 아픔을 묻지 않고 받아주었고
그저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으로 간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다시 숨 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