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얼떨떨한 내게 호주에서의 이틀이 지나가고 있었다. 새벽바람부터 보이지 않던 James 할아버지는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들어오더니, 본인은 쿠기인지 쿠지인지* 비치라인을 걷고 오셨다며 이야기를 꺼내시더니 곧장 내게도 말을 걸어주셨다.
What did you do today?
*Coogee beach; 대부분 '쿠지'비치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냥 인사치레로 볼 수도 있는데, 내게는 마치 압박면접에 들어간 것처럼 긴장감이 돌았다. 일단 이걸 영어로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고, 상세하게 설명하자니 말은 안 나오고, 어영부영 대충 대답하자니 이곳에서 유일하게 대화하는 할아버지가 다음에 말도 안 걸어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부리나케 눈알을 굴려대며 '나 오늘 뭐 했지...?' 하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한 것 같던 내 하루에도 뭔가 한 게 떠올랐다.
안부를 묻는다는 것, 나에 대해서 알아봐 주는 것. 쉬우면서도 쉽지 않을 이 짧은 한 마디가 죽어있던 내 하루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마치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고나니 수다쟁이 James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게 영어연습이야 되겠지만, 부끄러움과 민망함 또한 내 몫이라는 게 단점 이긴 했다.
한 때 이 간단한 인사조차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본업에 힘듦에 업을 바꿔야 하나 고민 많던 시절, "안녕하세요"라는 물음에 '나는 안녕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대답하지?'라고 떠올리며 머뭇거리다가 답도 못한 적이 있었다. 그냥 인사일 뿐인데 하고 넘길 수도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내게 힘든 순간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지나고 나니 그렇게까지 힘들 일이었나 싶기도 하는 것 보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시험 성적이 안 좋을 땐 망각이란 그 단어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힘든 순간을 다시 꺼내어 볼 때만큼은 망각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하고 깊은숨을 들이쉬게 된다.
고향집에 있을 때 일하고 돌아오신 엄·빠를 보고도 "왔어요?"정도의 인사만 하던 내가 떠올랐다. 다음에 통화할 때는 '오늘은 뭐 하고 보내셨어?" 하고 한 마디 더 붙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