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e can't." 호주 은행계좌 개설 도전기

by 영이
It's new day!


James 할아버지의 '오늘 뭐 했니?' 물음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눈알을 좌상방으로 굴리다 보니 새벽에 커튼을 치며 "It's new day!"를 외치던 James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맞다! 오늘은 호주에서 쓸 은행계좌를 만드려고 고군분투했던 게 떠올랐다. 그런데 계좌가 영어로 뭐지? 눈살을 찌푸리다 뇌리를 스친 단어를 곧장 말했다.

"Bank account! I opened a new account! and I just slept, all day long."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에 눈이 절로 떠졌다. 한쪽 눈만 실눈으로 뜬 채 다시 잘까 고민하다가 할 일이 많은 아침을 떠올리며 곧장 씻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구글맵을 켠 뒤 'NAB back'를 검색했다.


NAB 은행 계좌를 개설하려던 이유는 호주를 오기 전에 찾아봤을 때에도 ATM도 많은 편에 속했고, 무엇보다도 계좌유지비*가 없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 일자리도 불안하고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 혹시라도 수입이 끊켰는데 쓸데없는 곳에 돈이 새고 있다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상도 한몫 더했다.

*계좌유지비: 호주에서는 계좌를 개설하면 매달 $4~5불씩 자동이체가 된다.


숙소에서 Central station으로 향할 때 매번 지났던 지하도로. 가끔 버스킹으로 음악이 들려올 때면 BGM이 깔려서 그런지, 괜히 더 심드렁해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백패커가 Central station 부근이라 은행지점 찾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줄 알았는데, 아직 구글맵을 보는 것이 어색한 탓인지 아니면 내가 몰랐던 길치였던 것인지; 찾던 지점은 오간데 없고 어쨌든 어느 NAB bank 앞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도 얼마나 떨리던지, 문 앞에 서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할 말들 표현을 몇 개 더 찾아보고 나서야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No, we can't. You should find another branch."


아니 이게 웬 개떡 같은 소리인가? 분명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었는데? 순간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그렇게 은행 문 앞에서 마음 졸여가며 들어와서 어색한 썩소 장착한 채 어눌한 말투로 겨우 말을 꺼냈는데 돌아오는 말이 겨우 안 된다는 말뿐이라니….

가장 큰 문제는 주소지였다. 계좌를 개설하려면 주소지가 있어야 하는데 호주 2일 차 순진무구한 워홀러는 당당하게 "Hostel!"이라고 말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업자득이었구나 싶다. 아니, 분명히 몇몇 사람은 계좌도 만들어주고 다 했다던데? 한사코 안된다며 거절하던 직원이 조금 밉기도 했다.


참고이미지: Haymarket, Sydney. Jan Smith, https://www.flickr.com/photos/26085795@N02/8611644418

어딘지로 몰랐던 그 지점을 나오자마자 대문짝만 한 간판에 'MARKET CITY'라는 글자가 보였다. 계좌개설 실패의 후폭풍에 기운이 다 빠졌다. 일찍 나선 탓에 아침은 당연히 거른 상태였고, 거기다가 길까지 잃어 3-40분 파워워킹까지 더했으니 진이란 진은 다 빠진 느낌이 들었다. 배는 고프고 어쩌지 하다가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눈에 보이는 건물에 들어갔다. 뭔가 휑한 것 같았는데 좀 더 들어가니 저 밑에 상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옆에 카페며 푸드코너가 보였는데 '나도 저런 데서 일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이 듦과 동시에 '계좌도 못 만들면서 꿈도 야무지네!' 같은 자조 섞인 생각이 뒤따랐다. 층에 내려오고 보니 옆에 'Commonwealth bank'라는 간판이 보였다.


'Commomwealth bank', 가장 많은 지점과 ATM을 보여하고 있고 ATM수수료마저 무료라는 이곳. 하지만 진작에 내가 만들 은행 계좌 후보에서는 빠졌는데, 호주에 오기 전에 찾아보니 학생 계좌를 제외하고는 달마다 계좌유지비가 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어차피 NAB bank가 안되면 여기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에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지점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_^?


이 은행은 신기한 게 한 명의 직원이 코디네이터 역할로 상주하면서 간단한 업무도 돕고, 상세 업무는 배분하는 시스템으로 보였다. 눈을 마주치자 다가와서 말을 걸어오는데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듣고 그저 "I want to open account!"만 조용히 외쳤다.


몇 번의 "Pardon?"과 "Could you repeat that?"을 하며 들었던 말은 "Take a seat"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바디랭귀지의 힘을 빌려 겨우 소파에 앉았더니, 브루노 마스를 닮은 한 남직원이 오더니 자신을 '네이든'으로 소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Nathen'이었는데, 이 친구에게도 역시나 주소가 없다면 곤란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없는 주소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이 시드니에서 유일하게 아는 존재인 아는 동생에게 요청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동생도 곧 이사를 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Okay.."하고 발을 돌리려는데 Nathen도 "Okay!"를 외치는 게 아닌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점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말로 들렸다.


한국에서도 은행 설명은 정말 귀에 안 들어왔는데, 그걸 영어로 듣고 있자니 도통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대충 입출금 계좌와 Saving 계좌, 그리고 앱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영어는 모르겠고, 대충 해주긴 해준다는 거 같은데 그제야 잊고 있었던 계좌유지비가 떠올랐다. 만들어주는 건 참 감사한 일인데 떠오르가다도 간사하게도 계좌유지비 걱정이 들었다. 도중에 무를 수도 없고, 마저 비밀번호 설정도 하고서 마지막 서류 더미에 형광펜 부분에 사인을 해가는데 ‘응?’ 하는 단어가 보였다. 계좌 유지비란에 'Free'라고 적혀있는 게 아닌가? 놀란 마음에 두 눈 크게 뜨고 네이튼을 바라보며 "Free?"라고 물었더니, 네이튼의 대답에 아침동안 얼어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Yeah, it's free! No worries,
and Merry Christmas!"


예상치 못했던 선물 앞에 나도 연신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했다.


커먼웰즈를 쓰는 나를 보고서 계좌유지비 들지 않냐는 누군가에 물음에 나중에 알고 보니 학생계좌로 개설된 걸 알게 됐다. 네이튼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번만에 호주 계좌 생활을 하게끔 해준 Nathen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답을 정하고 나면 다른 답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세상 일이 대부분 될지 안 될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더라. 하지만 그 때문에 가능성조차 닫아버리고 시도조차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럴 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더 나은지, 아니면 재빠르게 포기하는 게 현명한지 아직 답은 알 수 없지만,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을 바엔 꼭 그 방법, 그 방향이 아니더라도 뭐라도 시도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이 아주 힘들고 어렵겠지만, ‘터널이 끝나지 않았디면 계속 걷는 수밖에’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나중에 <Finding Dori>에서 비슷한 대사를 찾게 됐다.

"When something is too hard,
There is always another way." :)
Just keep swi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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