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이 길이 맞는데….'
Roseville station에서 내려서 구글맵을 보며 집을 찾아가고 있는데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분명 '직진해서 좌회전, 직진해서 좌회전 한 번 더'만 하면 도착 이랬는데, 직진해서 가다 보니 웬 공사현장이 보였다. 표지판에는 'Residents access only!'라고 적혀있어서 잠깐 고민하다가 괜찮겠거니 하고 길을 따라갔는데, 아뿔싸, 떡하니 'Footpath closed'라는 표지판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속으로 '참, 오늘 아침부터 쉬운 게 하나도 없네 ㅎㅎ'하고서 연락했던 마스터(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네, 그쪽으로 쭈-욱 돌아서 오시면 남편이 입구에 있을 거예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며칠 전만 해도 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 요 며칠 사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막힌 것 같다고 하셨다. 옆으로 돌아오는 길을 듣고서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해 보니 깔끔한 아파트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셰어 구하는 글에도 새 아파트라고 적혀있긴 했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진짜 새 아파트였다. 새것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아직 집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는데도 뭔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 뿔테 안경을 쓴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분이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올라가 보니 전화를 받았던 여자분도 또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얼마나 새집이었냐면, 입주 예정인 방에는 아직 침대도 조립하기 전이었고, 새집 냄새는 기본, 인터넷도 아직이라 설치될 동안에는 셰어비에서 할인도 가능하다고 했다. 고작 세 번째 방 구경이었지만 기계처럼 '욕실은 어디이고, 몇 명이서 쓰고, 세탁-에어컨-쌀 등등' 인스펙션 레퍼토리를 쭉 물어봤다. 날씨 때문인지 길을 돌아온 탓인지 갑자기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그 모습에 여자분이 곧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주셨다. 말로는 "괜찮습니다"라고 했지만 이미 몸은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들어마시기 바빴다. 시원한 물로 몸도 진정시키고, 방 구경도 끝났기에 인사를 나누고 곧 밖으로 향했다.
새집 프리미엄에 대한 느낌이었을까? 여태까지 본 집 중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졌다. 방의 크기도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고, 역, 마트와 거리는 좀 있어 보였지만 신축의 위엄은 정말 무시할 게 못됐다. 게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비슷한 또래와 살게 되면 정보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후한 점수에 한 몫했다.
긴 하루가 지나고 백패커에 돌아오니 고기 훈연향의 그릴 향이 백패커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오늘은 'Burger day'. 단돈 5불이면 Beef나 Kangaroo meat 중에서 고를 수 있다고 했다. 언제 사 먹겠나 싶어서 캥거루 고기로 골랐다. 첫 캥거루 고기, 막상 맛을 보니 소고기와 크게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다진 고기라서 그런가?' '아까 걔가 좀 태우듯이 구워서 그런가?'같은 억측이 난무하긴 했지만 허기짐 덕분에 맛의 차이는 둘째 치기로 하고, 우걱우걱 남은 버거를 금세 해치웠다.
하루가 참 길다. 뭔가 한 것 같으면서도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더 했어야 할 것들'을 떠올리니 괜히 심드렁해지더니 내 하루만 작고 볼품없어지는 것 같아 후회만 쌓여갔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 하루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착각하는 건가?' 하고서 ‘또 그건 아닌데..’ 하고서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셀카가 찍고 싶어졌다. 이유는 앞으로 웃을 일이 더 없을까 봐 먼저 웃어두려고…. ㅎㅎㅎ
사진을 찍고 나니 곧 James 할아버지가 방에 돌아왔고, 할아버지의 'What did you do today?' 하는 질문과 함께 나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