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여자 Apr 30. 2016

코스모스는 개나리에게 진 것이 아니다

'주토피아'를 보고나서

  힘든 월말, 힘든 하루의 끝인데도.. 나는 실실거리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좋은 영화를 보고 막 떠들어 대고 싶은데 입으로 떠들면 내 감정이 다 날아갈까봐 글로 옮겨본다.

  

내가 바치는 돈이 너무 많아 그 중 일부는 서비스로 돌려주는 통신사가 한달에 두 번은 꼬박꼬박 영화를 보여준다. 오늘은 아침엔 눈을 뜨자마자 월말인데 아직 이용 못 한 내 영화 혜택 한 건이 떠올라 오늘 퇴근 후에는 꼭 그간 미뤄두었던 주토피아를 보리라 다짐했다.

 

치열했던 하루 업무가 끝이 보이고 실상 쥐고 있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나도 좀 살아야겠다며 그쯤해서 과감하게 조금은 이른 퇴근을 하고 찾은 평일(이라고 하기엔 불금)에 혼자 보는 영화는 꿀이었다. 나는 보통 잔뜩 우울하고 슬프고 고난과 역경이 많은 영화를 보며 가슴을 쥐어짜고 한껏 울다 나오는 것을 선호한다.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깜깜하고 타인들과 함께 있지만 지극히 혼자인 영화관이 나에겐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남자들의 사우나 같은 곳인 것이다.) 그런데도 안봤으면 후회했을만큼 금요일 퇴근 후 '혼자 주토피아 관람'은 탁월했다. 차별, 역차별, 낙인, 편견, 청년의 도시집중등 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지만  나는 단지 디즈니의 기발함에 무릎을 치며 힘들었던 요즈음을 잊고 웃으면서 보고 나와 기분 좋게 귀가하게 해 줘서 좋았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영화나 책을 보고나면 유난히 바빠지는 나의 뇌는 기여이 옛날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시험만 쳤다하면 50점을 넘지 못하는 6학년 수린이는 참 착한 아이이다. 어울리는 친구들은 깨나 성적이 좋은 편이라 시험만 끝나면 잔뜩 주눅이 들어 수린이의 작은 어깨는 더욱 움츠려든다. 그래도 착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이 아이는 이내 회복하고 (또는 그런 척 하고) 정상궤도를 찾곤했다.  하루는 수린이가 먼저 할 말이 있다며 날 찾길래 불러 앉혔더니 아무래도 자기는 공부가 길이 아닌 것 같단다. 볼멘 소리나 해대는 아이도 아닌데 깨나 힘들었던가 보다. 아니, 초등학교 6학년의 성적이 뭐 그렇게까지 중요하고 아이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 나는 아이가 너무 일찍 포기를 배우고 패배감에 젖는 게 싫어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했다.

"수린아, 개나리는 언제 피지?"

"이요"

"코스모스는?"

"을이"

"그럼 개나리가 이긴거야?"

"?"

"코스모스가 진거냐구."

"..,"

"다른 아이들과 너는 피는 시기가 그리고 종류가 다른  뿐이야.  일찍 폈다고 이기고 늦게 폈다고 진 건 아니니까 너의 때를 위해 지금 포기지는 말아보자."




오늘 내가 본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낙인을 찍고 또 찍히며 산다. 우리는 모두 각각 다른 종류, 다른 색의 꽃일 뿐이다. 늦게 핀다면 정성껏 돌보며 얼마나 멋지게 피려고 늦어질까 기대하면 된다. 그걸로 족하다. 옆에 먼저 핀 꽃 때문에 피지 않은 꽃을 나무랄 순 없는 것이다.









In Zootopia anyone can be anything.

주토피아에서는 누구든지 무엇이든 될 수 .



Try Everything!

다 해봐!






나무느으으으으을보오오오오오







+

나는 오늘 용산 CGV에서 영화를 봤다. 그 곳에는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청년들이 많았다. 용산은 노량진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이 있는 곳이다.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고된 수험생활 중에 일주일을 열심히 잘 버텨준 본인에게 주는 보상으로 또는 일상의 작은 변화를 꾀해 극장에 온 것이리라. 꽃피우려 나름의 열심을 다 하며 애쓰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누구든 뭐든 될 수 있으니 마음 먹은 건 다 해보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