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기 전에는 나이를 빨리 먹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 학년이 올라갔고, 학년이 올라가면 새 교과서를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환경이 알아서 바뀌었다.
공간은 그대로였지만, 나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매년 달라졌다.
선배는 줄고 후배는 늘었고, 헌 교과서는 버리고 새 교과서를 받았다.
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환경이 나를 다음 단계로 밀어 올렸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는 것’에 적응해 왔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환경이 더 이상 자동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게 가장 어려웠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고, 언제 운동하고, 뭘 먹어야 하는지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이제 이걸 해야 할 나이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자유는 생각보다 버거웠다.
누군가 제동을 걸어주지도 않고,
내 선택은 전부 존중받았다.
그 존중이 때로는 방치처럼 느껴졌다.
물론 조언은 많았다.
“그 나이엔 이런 것도 해봐야지”,
“미리 준비해야 나중에 편하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조언을 굳이 따르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해가 되면 목표를 세웠다.
금주, 금연, 달리기, 독서.
나쁘지 않은 목표들이었지만, 인생을 바꿀 만큼 큰 목표는 아니었다.
세월을 잘 보내는 방법이
대단한 성취를 쌓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한테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제는 안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로 갈지
계속 선택하라는 뜻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거창하지 않게,
하지만 방향만은 분명하게
살아보려 한다.
세월은 어차피 간다.
문제는 그 세월 속에서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