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한 언니의 김장을 도우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김치에 진심인 언니는 매년 몇 배는 비싼 유기농 배추를 미리 주문해 놓고 뿌듯해하며 기다린다. 김장날이면 며칠 전부터 손수 소래포구까지 가서 생새우를 사 오고, 필요한 재료를 하나하나 직접 장 봐두고, 김장을 위해 도우미 아주머니 두 분까지 모시고서 십수 년째 같은 방식으로 정성스레 김장을 한다.
그렇게 김장 김치가 완성되어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우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언니.
나는 매년 혼자 고생하며 힘들게 김장을 하는 언니가 안쓰러워 매년 김장 때마다 가서 도와주곤 하지만 사실 언니가 김장에 이렇게까지 진심인 이유는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것에 마음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아무 약속도 없는 토요일 오후.
간만에 찾아온 여유가 반가워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요즘 내가 진심으로 빠져 있는 피클볼을 치러 가기 위해서다.
피클볼은 배드민턴, 테니스, 탁구의 장점을 모은 하이브리드 스포츠다. 빠른 스피드보다 ‘전략’과 ‘재미’가 중심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단 한 게임만으로도 운동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느새 8개월째 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중간에 잠시 흥미가 시들해지는 듯하더니 다시 재미가 살아나면서 지금은 라켓을 잡기만 해도 몸이 먼저 웃는다.
오늘도 그렇게 신나게 게임을 즐기다 결국 부상이 찾아왔다. 급하게 방향을 틀다가 넘어지며 손목으로 땅을 짚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통증이 찾아왔다. 사람들이 놀라 괜찮냐고 물었지만 괜찮다며 끝까지 게임을 즐겼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순간 그제야 참아왔던 통증으로 손목이 욱신거렸다.
집에 돌아와 얼음찜질을 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는 건 그만큼 오늘 경기가 즐거웠다는 뜻일 것이다.
부상 앞에서 잠시 멈춰 서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왜 이렇게 운동에, 피클볼에, 마음을 주게 된 걸까?
아마도 ‘잘해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즐거워서 하게 되는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피클볼은 승부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짧은 랠리 안에 담긴 집중, 파트너와의 호흡, 공이 라켓에 닿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매 순간마다 쌓여가는 땀과 웃음. 그 모든 감각이 나를 생기있게 만든다.
요즘 운동과 글쓰기가 하루를 지탱해 주는 작은 기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지금 나는 무엇인가에 진심으로 빠져 있는 중이라는 뜻이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김장에 진심인 언니처럼, 피클볼과 글쓰기에 진심인 나처럼, 사람들은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힘을 찾는다.
그게 무엇이든, 진심을 다해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삶을 움직이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김장을 위한 정성과 기다림이, 누군가에게는 라켓을 쥔 순간의 설렘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글 한 줄을 써 내려가는 시간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에 마음을 주지만, 그 마음이 나를 살리고 또 나답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그래서 김장에 진심인 언니를 보며 나 역시 피클볼과 글쓰기에 이렇게 진심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뿌듯하고 조금은 든든하다.
사람은 결국 자신을 생기 있게 만드는 무언가에 마음을 주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진심들 덕분에 매일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리치그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