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에 갇혀있었다.
부모님 두 분의 긴 투병과 간병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하루를 버티는 일조차 벅찼다.
몸도 마음도 지쳐 갈 즈음, 믿기 어렵게도 부모님에 이어 나와 남편에게까지 암 진단과 수술이 찾아왔다.
힘들었던 투병 끝에 부모님 두 분을 차례대로 떠나보낸 뒤에도 우울감과 상실감은 깊은 바닥에서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많은 일들이 폭풍우처럼 2년여 만에 한꺼번에 일어났다.
그때 나를 붙잡아준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한 줄, 한 문장으로 토해내듯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의 무게가 조금씩 내려앉았다.
기록은 과거와 나 사이의 벽을 허물고, 나를 다시 일으키는 작은 기둥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책쓰기에 도전했고, 그렇게 내 이름으로 완성된 책이 12월 9일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 다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단단한 마음을 세우는 데에는 또 다른 기둥이 필요했다.
몸을 움직여야만 정신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걸 깨달은 건, 고양시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배우는 시민 생활체육교실’이었다.
올해 3월, 암 수술에 이어 또다시 담낭 절제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날, 같은 동네에 사는 외사촌 오빠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은경아, 내일 아침 9시에 오빠가 보내준 링크 꼭 열어서 '피클볼' 신청해라. 다시 운동해야지.”
그 한마디가 내 삶을 조금씩 다시 움직이게 한 첫 신호였다.
그렇게 올해 4월, 화정초등학교 실내체육관에서 나는 다시 코트 위에 서 있었다
피클볼 패들을 잡은 손은 어색했고, 몸은 무거웠고, 심장은 오랜만에 빠르게 뛰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온기는 놀라울 만큼 따뜻했다.
“괜찮아요, 처음은 다 그래요.”
“선수 될 것도 아니잖아요. 재미있게 즐겨요.”
짧은 격려였지만, 그동안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위로였다.
플라스틱 공이 코트 바닥에 튀는 소리, 패들에 맞아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 그리고 실수를 해도 "괜찮다"라며 웃어주는 크루들.
그 모든 것들이 서서히 굳게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정작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운동’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피클볼을 하면서 나는 점점 힘들었던 과거의 그림자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글쓰기가 마음을 정리하게 해주었다면, 피클볼은 내 몸과 관계를 다시 움직이게 해주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 덕분에 매일 웃을 수 있었고, 웃고 땀 흘리며 운동하다 보니 다시 살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역에서 만난 크루들은 내 세계를 넓혀주었고, 그 안에서 나는 다시 웃고,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 나는 안다. 스포츠는 단순히 땀을 흘리는 활동이 아니라 삶의 상처를 회복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통로다.
그리고 피클볼 패들을 잡았던 그 작은 순간의 용기가 지금의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 시작이었다.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리치그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