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혹은 20대의 성탄절과 연말은 늘 설레었고 반짝였다.
달력의 마지막 장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먼저 들떴고,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거리의 불빛과 캐럴 소리, 한 해가 끝나가고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던 시절이었다.
사랑하는 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 덕분에 서른이 넘어서도 연말이 기다려졌다. 그래서 아마 30대의 연말까지는 여전히 설렘의 편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성탄절이 다가와도, 연말이 되어도 예전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달력은 넘어가는데 마음은 조용했고 축제의 공기 속에서도 나는 늘 한 발쯤 떨어져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변한 걸까’, ‘왜 나는 이제 설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자주 따라왔다.
이런 나와 달리, 12월이 시작되면 둘째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와 트리를 설치하며 설레어한다. 어릴 때 선물 받았던 오르골과 스노볼에 불을 켜며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 다가올 성탄절과 연말을 기대한다. 성탄절에 가족들과 뭘 먹을지, 어디에 갈지를 고민하며 의견을 물어오는 아들이 귀엽기만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속도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어릴 때는 기다림이 많았다. 선물도, 약속도, 그날의 기쁨도 모두 기다려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느렸고 설렘은 자연스럽게 커졌다.
지금은 무엇이든 미리 알고, 미리 보고, 미리 준비한다. 기다림이 사라진 자리에 설렘도 함께 줄어든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또 하나는 책임이다.
어른이 된 지금의 성탄절과 연말은 정리해야 할 일들, 챙겨야 할 사람들, 마무리해야 할 감정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가 ‘잃어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삶의 어두운 계절을 지나온 뒤에는 아무 날이나 쉽게 들뜨기 어렵다. 성탄절과 연말, 명절. 아니 이제는 모든 기념일들이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 밝음 속에서 오히려 비어 있는 자리와 지나간 시간들이 더 선명해진다. 웃음보다 침묵이 먼저 찾아오는 이유다.
그래서 이제는 특별한 날이나 기념일이 예전처럼 설레거나 기다려지지 않는다. 대신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가 더 기대되고 더 소중해졌다. 별일 없이 하루를 마치고 무사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지는 날들이 늘어났다. 어쩌면 나는 설렘을 잃은 대신 삶을 견디는 법을 조금 더 배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은 더 깊어졌다. 예전의 설렘이 크고 화려한 불빛이었다면 지금의 마음은 낮은 온도의 난로에 가깝다. 요란하진 않지만 오래 머무는 따뜻함.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쉽게 들뜨지 않고 조심스럽게 하루를 살아간다.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많이 살아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기쁨과 상실, 기대와 체념을 모두 통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조용한 무게 같은 것. 그래서 이제는 억지로 즐기지 않아도 괜찮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마음 어딘가에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다.
비록 예전처럼 설레거나 반짝이지는 않아도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리치그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