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by 릴리안

우리 약국은 소아과 의원 바로 옆에 있다. 당연히 고객의 대부분은 아가와 부모들이다. 개업초에는 아가가 세명만 와도 약국이 붐벼서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다.

아가 하나에 보호자가 최소 한 명에서 세명. 금쪽이들이라 부모에 조부모까지 오는 경우도 있어 약국 안은 아수라장이다. 뛰어다니며 약국물건을 뒤엎는 아가, 들어서면서 목이 터져라 우는 아가,

아이보다 지쳤는지 더 신경질 내며 아이에게 화를 내는 엄마, 아가가 온 약국을 휘젓고 다녀도 핸드폰만 하는 무신경한 아빠. 이들 속에서 내내 약을 짓다 보면 아이들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몸은 알 수 없는 피로감으로 지쳐갔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직업상 고객이 아이다 보니 처음에는 개업장소를 잘못 택했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더구나 소아과 약은 정밀하고 까다로워 조제하기 힘들다. 어른 약은 정제로 나와 처방 그대로 조제하면 되지만 아가들 약은 물약을 계산해서 시럽병에 따라야 하고 정제도 계산해서 분쇄한 후 다시 소분해야 하는 과정으로 약사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아가들이 많이 올수록 소득은 늘지만 직업적 피로감은 날로 늘어만 가는 구조였다.


그렇게 어언 십수 년이 흐르면서 소아과 조제의 달인이 되어가자 어느 날인가부터 아가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티하나 없는 뽀얗고 말간 피부, 깊고 맑은 눈망울, 오뚝 히 솟은 콧날, 배시시 웃을 때면 천사가 아마 저렇게 웃을까 싶다. 친구들이 하나 둘 할머니가 되면서 아가들 자랑을 하면 처음에는 할머니라는 단어가 낯설면서도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남들이 할머니가 되니 나도 저절로 되겠지 하는 믿음을 가졌다. 코로나 시국에 결혼식을 했던 아들은 처음에는 피임을 하는 듯했다. 감염환자로 북적이는 병원에 임신을 해서 다니는 것도 불안해 처음의 피임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아들 며느리는 젊고 건강했다.

그렇게 믿은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은 없고 대놓고 물을 수도 없는 시어머니라는 자리는 참 불편한 자리였다.


소아과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동네 초등학교 일 학년 학급수가 17명 정원 두 반이래요.

이 근처 소아과들은 다 폐업해서 아가들이 우리 병원에 오니 망정이지 유소아를 상대로 하는 모든 직업이 힘들겠어요.

그때서야 개업초기에는 물밀듯이 오던 아가들이 줄어들어 어느새 환자들의 절반이 성인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우리 세대가 젊을 때 당연시했던 결혼과 출산이 아들 세대에는 선택으로 바뀌었고 그들은 많은 시간과 재력을 필요로 하는 아가를 선택하는 대신 본인들의 생활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다.

이런 젊은 세대를 무조건 나무랄 수만은 없는 세상에 과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좋아지긴 한 걸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다.

이전엔 적은 소득으로 식구 여러 명이 힘들게 나누어 사는 게 당연했다면 지금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세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결혼도 만혼으로 바뀌고 따라서 출산연령도 점점 늦어져 정상분만보다는 시험관 아기가 많아져 예전엔 보기 힘들던 쌍생아가 무척 많아졌다.


아들내외에겐 기다려 보다 안되면 의술의 힘을 빌려보자고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인공의 힘을 빌리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아, 나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요즈음 나의 기도제목 일 순위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