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세요?

by 릴리안

왜 일하세요?

약국에 가끔 오는 중년의 남자가 내게 묻는다. 그는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생활보호 대상자다.

느닷없는 질문에 멍한 표정을 짓자 다시 묻는다.

아들이 없어요?

네? 아들이 둘이나 있어요. 그래도 일은 해야 하지요. 얼떨결에 나온 대답이다.

그의 무례한 질문에 기분이 살짝 나빠지면서 일하는 것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의 질문의 의도는 남편이나 아들이 없어 생계가 곤란해 초로의 나이에 일을 하냐고 묻는 듯하다.

일한다는 것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다. 그는 일이란 먹고살기가 힘든 사람만이 억지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요즘은 나라에서 생보자들에게 생활비뿐만 아니라 쌀, 빵, 김장김치, 코로나 땐 일반인은 구하기도 힘든 마스크를 우선 지급해 준다.

그는 아마도 나라덕을 보며 유유자적 사는 게 좋고 개미처럼 사는 일반인이 이해가 안 가나 보다.

사지육신 멀쩡하면서 일하지 않고 사는 걸 큰 행운처럼 생각하는 그이가 이해가 안 가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일할까?

그이가 가고 이 문장이 화두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이란 소득이 생기는 모든 활동뿐만 아니라 산술적인 수치로는 계산되지 않는 가사, 봉사활동 등이 포함된다.

일하면서 소득이 생기고 그 소득으로 집안과 나라의 경제가 돌아간다. 또 가사나 봉사활동 등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평화와 위로를 주는 무형의 재산일까.


결혼 후 십 년 동안, 남편과 나는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나라가 무럭무럭 경제발전을 하는 동안

아들 둘을 낳고,

집 장만을 했으며,

미래를 위한 저축을 했다.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왜 사는지 모를 정도로 십년동안 일만 한 후 이룬 결과였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약국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항상 부족한 시간에 쫓기며 허덕허덕 살다 누리는 최상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만들어 주고

과제물을 챙겨주며 그동안 못한 취미생활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문화센터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점점 시들해갈 무렵

수치로 보이지 않는 가사나 아이들 공부를 돌보는 일에는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 이름으로 된 약국을 할 때는 느끼지 못하던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 갔다. 더불어 만성적인 우울증이 따라왔다.

남보기엔 부러울 것 없는 형편인데도 마음은 텅 비어 가고 의미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의약분업이 시작되어 가정을 가진 여자가 일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자 난 나만의 공간인 약국을 차렸다.

물론 약국일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처방전대로 실수 없이 조제를 하고

복약지도를 친절하게 해야 하며

약품주문, 정돈, 진열, 일반약 판매등

끝없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긴 터널이 지나간 뒤 다시 시작한 일은 나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예전 같으면 타성에 젖어 설렁설렁하던 일도 기쁘기만 하다.

끝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동네 할머니도 정겹고 반갑다.

소아과 옆이라 개구쟁이던 아이들이 어느덧 청년이 되어 인사하느라 들어서면 더 반갑다.

무엇보다 소중한 건 일의 의미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오직 소득의 목적으로만 일을 했다면 요즘에는 일하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은퇴한 동창들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일을 놓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생겼다.

치매에 걸려 여생을 우울하게 보내시던 엄마를 보내고 나니 나의 노후는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첫째가 건강이지만 육체적 건강보다 먼저 앞서는 것이 정신적 건강이다. 판단력을 잃고 아가처럼 변해버린 엄마를 보다 보면 약국에서 일을 하며 늘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도 치매예방에 일조를 하는 것 같다.

요즘은 출근하면서 늘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무사히 출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 찌푸리고 나가는 아들이 언제쯤이나 내 마음을 알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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