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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날 땐 유언장을 읽는다.

by vakejun


오늘 읽었다.

그때의 무딘 칼로 한번 서걱 베고 났더니 작은 것에도 '아얏!' 했던 심통이 하찮아진다.

큰걸 배웠다.


뭐 꼭 나아질 필요 있나 하다가도 조금 덜 상처받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


살다 보면 풍파 겪잖아 다들

누가 온실에서만 살아.


1년 365일 중에 360일을 체감으로 악몽과 시답잖은 꿈을 꾸고

그중 절반 정도를 기억하고 까먹기를 반복하면서 울며불며 깬다고.


부정의 긍정





긍정의 수긍




괜찮은 삶이 몇이나 되겠어.

난 이번에 대단하지 않은 걸 좀 깨달은 것 같다는 생각.


그 모진 풍파 오더라도 무덤덤하게 시원찮아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로.


발톱은 사냥할 때나 꺼내면 되는 거지

이유 없이 매번 이를 드러내고 발톱 세울 필요 없다고 봐.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기대면서 "내가 이대로 끝이라고?" 하는 허무맹랑한 엔딩은 아닐 거라고.


그냥 되는대로 흘러나오는 노래 들으면서 살래.


나라고 꼭 좋아서 이러는 건 아냐.

살자고 하는 짓이야.


좀 고단할 수 있어.

- 기분이 별로일 때 독해지지말자.



꽤 많은 시간을 있는 그대로를 느끼기보다 교과서에 나오는 '행복 그대로의 행복' 만을 바라보다 정작 순간의 찰나의 예쁘고 아름답던 순간들을 불행으로 메꾸는 멍청한 짓은 그만하자.


가장 격했던 그때의 내가 숨도 들이켜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휘갈기던, 바보 같지만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다시없을 그리고 지워버릴.


정신 차리라고 올리는 반성문.




- 유언장 -



삶에 미련이 없습니다.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견디기가 너무 힘듭니다.

이제 그만 살고 싶어요.

버거운 무게가 어깨를 머리를 때리고 부숩니다.

겪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고통입니다.

제발 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제 몫이 여기까지 인 게 맞나 봅니다.

그러니 초라하게 보내지 마시고 애도해 주십시오.

다음 생엔 우리 만나지 말아요.

저는 안 태어날 생각입니다.

세상은 인간으로 살아가기에 참으로 벅찬 곳입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곱게 포장해 보내주세요.

제일 좋아하는 옷과 장신구로 엮어 보내주세요.

미련이라기보다 가뜩이나 초라한 삶,

좋아했던 것이나마 가져가보렵니다.

징한 인생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버텼습니다.

가고자 하는 곳은 없지만 지옥은 아니길 바랍니다.

지옥은 다시없을 환생 없는 구질함일까요.

그래도 사람 인생보다 낫지 않을까 별의별 생각을 합니다. 구차하게 가서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부끄러운 삶을 살아 죄송하고 도움 되지 못한 인연이라 죄송하고 우리 다신 만나지 마요.

미안함이 커지면 다시 만날까 두렵습니다.

우리 여기까지라 생각하고 연을 끊어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조금만 슬퍼하고 잊어주세요.

저는 그러지 못해 최악의 삶을 살았습니다.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고

나아가기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절 아는 모든 인연들은 여기서 안녕해요.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아끼는 가족과 오래된 친구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그래서 더욱 연을 끊고자 합니다.

제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으니 이 악물고 가는 인생, 이거 하난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가족들을 만나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고 고마웠습니다.

친구도 고맙습니다.

저와 엮였던 씨발 같던 악연들은 꼭 앙갚음하겠습니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습니다.

울면서 쓰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안타깝고 불쌍한 한 인간이 무너지는 꼴을 겪게 만들어 송구합니다.

죄송합니다.

엄마 언니 오빠. **아 **야.

만나서 따뜻했고 다행이었고 위안이었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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