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치른 장례식은 나의 아빠.
내 병과 더불어 그 일은 10개월이란 간격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고 나는 그야말로 나락이었다.
나의 병 소식엔 가족 그 누구도 찾아오지 말라
일렀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 불러서 보여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 후 첫 가족들 모임에서 이방인처럼 겉도는 나를
보고 다음번엔 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고 했나?
도통 이런 시련을 난 이겨나가지 못하는데 뭐 어떤
깨달음을 얻으라고 나에게 이러는지,
난 무얼 알아야 하고 어찌 견뎌내야 하는지 왜 나인지 설명을 해명을 듣고 싶다.
알려주는 이도 없고 꼭 알아야만 할 이유는 없다.
그저 현실이다.
까마득하다 보니 저런 것도 의문이 생기는 거다.
종종 많은 것들을, 그것도 한꺼번에 가져가버린다.
악재다.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자비도 없어라.
난 단단하지 않다.
아니다. 단단해서 부러지고 만다.
위로가 아무 소용없는 허송세월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모든 것이 무기력했다.
죽을 날만 받아놓은 반송장이 되어감에도
특유의 예민한 성질머리만 남아있었다.
일주일마다 약물 치료 효과를 봐가며 정신 가정의학과를 드나들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힘들 때 왜 안 갔을까..
어느 정도 약물이 도움이 되어갈 즈음에는 나 자신이 불쌍하고 가여웠다.
왜 이토록 나를 방치하고 있었나에 대해.
나 정말 힘들었었구나-를 마주하고 나니
더 불쌍해지는 건 또 뭔지..
난 웃으면 안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게만 살 줄 알았다.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웃고 떠드는 행위 자체가 사이코패스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말했다.
언젠가는 세상이 달라져 보일 거라고.
'아니요. 세상은 달라지고 나만 그대로인데요..'
중간쯤 되니 과거의 내가 불쌍했다면
어느 정도 회복선을 타기 시작할 때엔
주변의 불편한 상황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나아져가고 있는데 왜 주변은 이리도 소란스럽고 복잡한지..
약이 소량으로 점점 늘어만 갔다.
약에 의존하게 될까 봐, 반면에 약을 끊으면
전처럼 돌아가게 된다는 담당의 말에 그렇게 될까
겁이 났다.
참는 것은 그대로 곪아가고 있었다.
쥐어짜듯 터트리고 나니 옹졸하고 치사했던
과거의 고름이 내 발목을 잡는다.
깔끔 떠는 성격에 먼지가 묻은 거 마냥
찝찝함을 덜어낼 길이 없다.
훌훌 털고 일어나고 싶지만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먼지가 물었다.
-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냐고..
나란 덩어리는 죄책감과 과오를 불행을 덕지덕지 붙이고 의지박약인체로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하나씩 떼 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남들에겐 참으로 관대했다.
'힘들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병신아.. 너나 잘해.
누가 누구더러.
정신을 차린다.
아, 놓친 것들이 너무 많다.
젊고 예뻤던 그때를 방관했던 과거의 나는
오지게도 무참했구나.
겉보기 좋은 척 그만하고 힘들다-라고 소리 내자,
힘들어도 괜찮아- 한다.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돌돌이로 먼지를 뗐다.
비가 온다.
"괜찮아, 비는 맞으라고 오는 거야. 이 정도 비는 맞아도 돼"
아무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