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의 룰라비(lullaby)
어릴 때 봤던 대부분의 동화책을 싫어했다.
사실 책이 싫었다기보다 득실대던 공주들의 시작이 별로였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핸디캡을 안고 태어나고 살아간다.
엄마를 일찍 여의고 못살게 구는 계모를 비롯, 노동착취에 살인미수를 당하는 동안 아버지란 사람은 뭘 하고 있었는지 도통 모를 전개들.
세상 불편하다.
나에겐 엄마가 전부인데 도대체 이 아이들은 엄마 없이 그 고된 막장 드라마를 어찌 '왕자'놈 하나만 보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전래동화가 차라리 낫다.
이솝은 양반이라고 해두자. 교훈은 있었다.
저 세계에서 다루지 못할 '한'이라는 걸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알게 되는데, 동/서양 막론하고 부모의 부재는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환경임엔 틀림없다.
전래동화는 확실히 권선징악에 가깝다.
엄마의 가정교육과 흡사하다.
착한 일에는 그에 마땅한 상이 주어지지만 나쁜 일에는 반드시 응당한 대가를 치른다.
거짓말 안 하고 숙제 먼저 하고 엄마 아빠가 바쁠 땐 청소도 깨끗하게 해 놓고 내가 먹은 도시락통은 내가 설거지해 놓는다. 꾸지람도 칭찬도 많이 들었다.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괜찮다.
내가 생각한 엄마는 계모가 아니었으니까.
언니는 엄마가 너무 모질어 계모였냐고 의심했다고 했다.
오빠는.. 그냥 질투의 대상이었다.
오빠는 청소도, 설거지도 안 하고 매번 날 괴롭히기만 했지만(엄마는 '귀여워서'라며 오빠편만 들었다)
군대에 가고 직장에 다니는 오빠가 전화를 해오면 이미 엄마는 화색이 돈다.
"하나밖에 없는 엄마 아들 전화!"
그렇지만 오빠만큼 착한 아들이 없다는 걸 안다.
나의 이야기에는 공주도 왕자도 없었지만 가족은 있었다.
한은 잘 모르겠다. 라고 썼지만, 모르는 걸로 봐서 분명 어딘가에 있다! 에 우리 오빠 손모가지를 건다.
오빠는 착하다.
참, 할 말이 많은 양반인데.. 이 글에 접목시키기에 썰이 많아 여기서 이만.
통잠을 못 자는 요즘 새벽마다 깨기를 반복한다.
다시 동화를 읽어주는 채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이솝우화나 탈무드를 좋아한다.
이야기가 고소한 면이 있다.
랍비의 가르침에는 뼈가 있기 때문.
뻔한 해피엔딩의 골 때리는 결말보다 꼬수운 가르침이 내게는 해피엔딩 이상으로 재미있는 자장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