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성공

by vakejun


좋아하는 새 옷을 입고 엄마랑 손을 잡고 낯선 길을 걸었다. 커다란 건물, 깨끗한 인도가 예쁘다.


무엇보다 엄마랑 단 둘이 소풍 나온 느낌이 참 좋았더랬다.


엄마와 아빠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꽤나 심각하게 보였지만 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것을 해결하러 이곳에 왔다고 짐작을 할 뿐이었다.


법원.


짧은 인생치고 빨리 갔다.



다 큰 어른들이 내게 속옷만 입혀놓고 한 바퀴를 돌라고 시켰다. 체중도 재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 체중이 미달인데 어떡하죠? 바지라도 입었으면 오다 돌멩이라도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체중이 미달이라 곤란하다는 표정과 말을 이어갔다.

넘쳐나는 인구, 학교에 미어터질 인원제한에 입학심사마저 까다롭게 보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사정을 했다.

학교를 가야 한다!

시골이라 인원이 많지 않아 입학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라고 호소하셨다고 한다.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면 '취학통지서'라는 것이 집으로 날아오곤 했는데, 와야 할 것이 오지 않고 사정을 알아보니 출생신고도 남자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생신고를 남에게 부탁한 점, 공무원도 여자애 같은 이름과 성별 매칭을 못 시킨 점, 모든 것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엄마와 아빠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뒤늦게 정정하려 나를 데리고 법원까지 가신 거다.




돌아오는 길, 고개가 꺾어져라 쳐다본 높은 담벼락 앞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왜 유치원 못 다녀?"

"동네엔 유치원이 없고, 다니려면 엄청나게 멀어서 니가 못 다녀."


응. 그래도 됐다.

조금 있으면 학교에 갈 수 있으니까 어린 맘에도 신기하게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책가방이 무거워 키가 안 클 줄도 모를 피노키오 가방을 메고 신나게 학교에 가는 상상을 했더랬다.



이상한 게, 어른이 된 나는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는 바보가 돼버렸다.


그 법원은 나중에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할 작정으로 자식들 모르게 들렀던 너저분한 거리로 전락했고

이혼은 피했지만 엄마에게 전해 들은 가슴 아픈 얘기는 내 기억을 덮어씌우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불현듯 생각이 나 버릴 줄은 몰랐다.



나의 유년엔 없었지만 인생의 절반을 나눈 네게 언젠가 물었다.


짐숭, 네가 가진 경험 중에 내게 하나 줄 수 있다면 뭘 줄래?


"내가 다닌 유치원?"


주저 없이 그 소중한 경험을 내게 준다니 사뭇 진지한 그 대답에 몽글해졌다.

그래.. 애는 착해.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걸 놓쳤지만,

이 나이에 이런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거면

순진하게나마 성공했다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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