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의 대표적인 표식을 뽑자면 해리포터와 탄지로가 있겠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왼쪽 이마에 살짝 파인 흉터자국의 내가 있다.
저 양대산맥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끼워 맞추기가 가능하다. 장사를 해야 하나.
그 상처는 아기 때 수두로 생긴 흉터라고 한다.
엄마 아빠는 날 잃어버리면 이마의 흉터로 찾으면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잃어버릴 생각이었나..
그 시절엔 인신매매도 많고, 실종사건도 흔했다.
재난 문자 하나 없는 시대.
모든 가능성을 대비하는 'N성향' 부모들이 만들어낸 묘책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특징으로도 찾겠다 싶은 건 꼭 나에게 말해주곤 하셨다. (정말 잃어버릴 참이었나?)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은 그대로다.
실종건에 관한 재난알림이 쉬지 않는다.
이렇게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갈 곳을 가지 못하고 볼 사람을 보지 못한다고?
아마도 치매려나, 몸이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건가.
처음에는 얼마간 열심히 정독했다.
누군가는 애타게 기다릴 걸 생각하면 인간 된 도리상 그래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그런 인간도 매번 반복되는 알림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안타깝기는 하나 발 벗고 찾아 나설 일이 없는 '남의 일'이 돼버렸다.
왜 반복되는 일상은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은가.
경고음은 점점 무뎌져간다.
누군가의 실종과 이별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 속에서 냉담해졌다.
희미한 이마의 흉터보다 더 분명한 흔적들이 눈앞에 있어도 외면하게 되는 지금,
반복되는 알림 속에도 분명히 누군가의 애타는 신호는 있다.
단순한 알림이 아니라 어쩌면 절박한 마지막 기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