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언제

by vakejun


감정이란 건 통제가 가능할 때에만 자유롭다.


마음껏 분노하고, 복기하고 되씹으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선을 다 건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휘발된다.


쉽지 않다.

그것이 문제이자, 핵심이다.



어떠한 일이 있었다고 치자.

나는 경험했고, 거기서 수많은 감정선을 읽었다.

'느꼈다'가 정확하다.


친밀할수록 치밀하게 감춘다.

가까울수록 숨기는 법부터 배운다.


내 감정은 단순 복잡해서 그 일이 일어난 시점부터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되씹고 악물기를 반복한다.

왜, 어째서, 뭐 때문에?


동조 없는 감정은 조금 괴롭고 쓸쓸하다.



해결지점은 찾아온다.

소모와 회복이 맞닿는 그 경계, 손익분기점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일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뛰어들고 말 거야.

끝내야 하는 지점이라면 받아들이고 그게 아니라면 나름 땡큐야.


사람의 결이라는 건 행동방식에서 드러나는 법인데,

아마 난 그 결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덤볐는지도 모른다.



- 자, 일단 먹어.

먹고 나서 너를 조질 거야. 그러니까 든든히 먹어.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넌 이미 알았을 거고,

조용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얼굴 보고 이렇게 내 감정을 토로할 날만을 기다렸다는 것 역시 알았을 거야.


믿는 지점이 끓는 지점보다 높다.


조용한 두드려 맞기에

"그렇게 느꼈다면 아마 내가 서운하게 해서일 거야."

넘들은 좀처럼 하기 힘든 '인정'을 너답게 한다.



감정은 감출수록 종이벌레처럼 갉아먹기를 반복한다.


내가 느끼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른다.

모르는 걸 미리 알아채 주길 바라는 건 '이기적'인 감정이 부추기는 것이기에 속아 넘어가면 '서운함'만 추가된다.


감정은, 이해받기보다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얼굴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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