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께 드리는 편지
은사님은 조금 멀어 보이는 단어입니다.
선생님, 저를 기억하실까요?
열여섯, 나의 국어를 깨우쳐 주신 선생님께 몇 자 올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시작 전, 예습을 해온 아이가 없는지 매번 잊지않고 찾으셨습니다.
저는 그게 제가 될 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수업시간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니까요.
좋아하는 과목은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아도 점수가 잘 나온다는 자만과 오만이 있었습니다.
영어와 한문, 미술이 그랬어요.
암기과목은 외우면 그만이고요.
수학은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한번 걸리면 뒤진다는 악명 높은 '에이즈'때문에 아주 곤혹스러웠습니다.
수학시간만 되면 책상아래 두 손가락을 접고 '제발 나만 걸리지 마라'며 빌었습니다.
핵심 교과인 국영수에서 수학은 이미 나가리가(이런 국어선생님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되었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저는 교탁 앞, 즉 맨 앞자리였습니다.
뒤를 돌아봐도 손을 드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왠지 해맑게 웃는 선생님을 실망시키기가 싫었습니다. 특히나 담임선생님인데 말이죠.
그래서 티가 나는 색의 볼펜으로 '예습'이란 걸 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어김없이 찾으셨습니다.
"혹시 실수로 예습해 온 사람?"
웃음, 미소에 더 가깝습니다.
손을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도, 그다음 시간에도.
몇 번의 눈도장과 함께 오늘도 저를 가리키며 예습을 해온 저에게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고래입니다.
엄마와 거의 동일시됩니다.
저는 칭찬을 먹고사는 춤추는 고래입니다.
인정받는 아이라는 건 그만큼의 애정도 함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배신감도 컸습니다.
운동장 아침조회, 저와 우리 반 깍쟁이가 주번이었을 때 문을 잠그지 않은 건으로 일주일 연장이란 벌을 주셨습니다.
어찌나 야속하고 미웠던지요.
일기장에 어린 분노를 그대로 눌러 담았습니다.
선생님은 왜 저를 나무라지 않으셨나요?
부러 예습도 해가지 않는 기싸움하는 못난 아이를 왜 이뻐해 주셨나요?
부모님보다 진로에 더 진심이셨던 선생님 말씀을 안 들은 그때를, 제일 후회하는 첫 번째로 꼽습니다.
국어가 국어답게 쓰일 수 있도록 바른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덕분에,
저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문장으로 배웁니다.
국어가 남긴 역사 위에서,
저의 '오늘'과 다른 이의 '오늘'을 이어가며
잘 배운 언어로 세상을 풀어가겠습니다.
제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