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사드려도 될까요?
말하자마자 바보 같은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어르신의 팔 언저리를 살짝 붙잡고 물어봤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46번째 정기검진일,
11시 30분 진료.
늘 그렇듯 일찍 도착한다.
도착접수증을 끊고 기다리다 보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거나, 스케줄 변동이 생긴 환자들로 미리 도착한 환자에게 알림 문자를 보낸다.
- ㅇㅇㅇ교수님 진료 대기 5번째 순서입니다.
진료실 근처 대기석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당일번호를 확인하고 제시간보다 빠른 진료를 보고 나왔다.
오늘은 운이 좋아 상담지연도 없고, 늘 3분 컷이던 상담도 그럭저럭 주고받으며 웃기도 했다.
대한외래에서 본관을 가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려고 줄을 섰다. 앞, 그 앞 손님이 계산을 잘못하고 가는 바람에 카운터에서 소리가 터졌다.
1,200원이었던 빵을 1,150원만 내고 가져간 사람을 불러 세운 것이다.
계산을 하고 지나치니 빵 주인은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빵은 두고 백 원짜리를 도로 가져가셨다.
흰머리 히끗한 할아버지였다.
어쩌다 보니,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저기..
어르신은 나 돈 없는 사람 아니다, 모르고 그런 거다.
그러실 수 있죠. 나라도 사드렸을 법한 좋은 퀼팅잠바를 입고 계셨다.
저희 할아버지 생각나서 그랬어요. 불편하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말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둘 다 당황했다.
죄송해요. 사실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빠생각이 나서 그랬어요.
꺽꺽 거리며 말하는데, 대충 알아들으신 것 같았다.
눈치 없는 눈물이 자꾸 삐져나왔다.
나는 칠십몇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12년, 살아계셨으면 비슷할 나이다.
나이 들면 죽어야 되는데.. 와이프도 치매야.
자식들만 고생해. 며느리는 150 메다 앞에 사는데 한 번도 와보질 않어.
아들이 약처방을 받으러 간 사이 나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아드님 계시잖아요, 사세요. 그렇게 가시면 자식은 사무쳐요.
이 좋은 세상에 그런 생각 마시라고 했지만
연달아 그렇게 죽어야지, 아가씨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야 하셨다.
아니요. 저도 아빠한텐 몹쓸 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은 어리둥절하게 다가왔고 후딱 목례만 하고 뛰쳐나왔다.
오전, 병원으로 가던 길에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이제서야...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던 2층 건물의 커피빈은 사라지고 없었다.
요망한 짐숭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배려심이 망설임을 낳았나 보다.
이해한다. 나란들 뭐라 했을까.
답이 없다.
이제는 하나하나 사라져만 간다.
옅었던 목소리도 그러려니 했지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젠 힘이 든다.
그렇게 매일 울며 쏟아냈던 속 쓰린 아빠이야기도 줄어든다.
과거는 과거형일 뿐이다.
과거에 머문 사람을 어떻게 불러와도, 살아있는 사람만 못하다.
아빠이야기보다 아저씨 이야길 더 많이 하는 게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이 또한 이해한다.
나란들 옆에서 그만큼 할 수 있을까.
현재가 답이다.
할아버지께 사세요, 요즘 얼마나 좋은 세상인데..
정신과 그렇게 다니고도 몰랐던 건데.
그리움이 사라진 건 아니다.
조금, 버텨내는 것에 단련된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