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가 살아났다.
용케도 살아있다.
이번 감기 지독했다.
어디서 바이러스가 침투했는지 나의 자가면역질환은 이 몹쓸 유행에도 민감한 건지...
좀처럼 잘 걸리지 않는 감기에 한번 걸리면 죽을 듯이 앓는 그 감기에 냅다 걸려버렸다.
37.7도의 고열에 시달리고 독감, 코로나 검사를 했지만 아니란다.
몸은 축나고 입맛도 없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열에 치여 기절하듯 자는 건 거의 모든 기억과 감각을 마비시켰다.
이상하다.
내 몸은 이렇게나 정직하게 아픈데 독감이 아니라고?
사흘을 끙끙 앓고 날 살려주었던 메니에르의 초기 처치를 해준 병원으로 갔다.
A형 독감이란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독감이 기쁘다기보다 내가 이토록이나 앓았던 것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반가웠다.
이제 제대로 된 처방만 받으면 고열과 뚝뚝 떨어지는 콧물, 기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이 아프면 새삼 평소를 찾는다.
운동 좀 할걸.
체력 좀 기를걸.
내 몸에 좋은 것만 넣어줄걸.
그러기엔 햄버거를 너무 좋아한다.
그나마의 정기검진도 아니었다면 급하게 관리를 안 했을 거라 생각하니 그 또한 아찔하다.
어쩌면 이게 날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묘하게 합리적이라 이제는 그리 믿는 편이 편하다.
시력도 컨디션에 따라 편차가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흐릿하고 보이지 않더라니, 이렇게 독감에 무너지는구나.
약이 좋긴 좋다.
열만 안나도 이렇게 딴짓도 할 만큼 살만한 에너지를 준다.
지금은 웬만한 크기의 알약과 개수만 아니라면 한 번에 털어 넣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이렇게 된 데엔 다 엄마 아빠의 공이 크다.
"아이고, 우리 땡땡이 약 잘 먹네~세상에서 우리 땡땡이가 약 제일 잘 먹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부응했다.
한알씩 물배가 차도록 먹을지언정 목구멍이 작은 나는 그렇게라도 먹어냈다.
나는 정말 세상에서 약을 제일 잘 먹는 사람(어린이)인 줄 알았다.
지금도 약을 먹을 때면 젊었을 때의 엄마 아빠가 나를 구워삶던 때가 떠오른다.
아프니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이번 주엔 못한 것이 많다.
꼼짝없이 집에만 갇혀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틈틈이 소독과 빨래를 했다.
이 놈의 직성, 개도 안 가져갈...
출근도 못하고 웃긴 건 미리 저장해 둔 저장글로 업로드는 했다.
요일 감각이 없어 놓칠 뻔했다.
꽤나 진심인 것에 놀랍구만.
지난주 스타벅스 파트너님이 갈라파고스 원두 원플러스 원 행사할 거랬는데..
그걸 못 써먹어서 매우 원통하지만?
마침내 오늘 왔다 이거지.
아프지만 뭔가 소소한 일상을 되찾은 것 같아서 기분 째진다.
평소로 돌아온 거 축하해.
내일은 침대 바이러스를 박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