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통과하는 문을 마주할 때면 가끔 외친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앞서가는 낯선 이를 보자-
내가 통과할 때까지 살짝 잡아주며 기다린다.
가벼운 목례로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아, 배운 사람!
배려를 마주했으니 오늘의 당신과 나는 '생'의 드나듦에서 기분 좋은 공기를 얻었다.
신호 없는 거리, 멈칫 좌/우를 살피면 보행자 먼저 가라는 손인사를 가끔 만난다.
들리진 않지만 입모양으로 감사합니다- 를 외친다.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면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해 손을 펼치며 안녕? 하면 견주분이 빙의를 해주신다.
"안녕하세요!" 복 많은 강아지다.
다음 생엔 영&리치로 태어나라.
이생의 친절을 접하면 나도 그 기대에 부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교통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양보해 드린다.
누군가도 내 엄마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면 하는 바람이 섞여 있다. 이유 있는 친절이라도 베푸는 게 내 양식과 양심에는 맞다.
'기저질환'이라는 게 생기고 택시를 타자는 내 설득이 통하지 않아 지하철을 타고 엄마와 이동한 적이 있다.
어마어마한 인원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서 있기 힘들었던 난 허리수술을 한 엄마 옆 노약좌석에 앉아있다.
떠밀리듯 오던 인파엔 고얀 할망구 하나가 있었는데 젊은애가 노약좌석에 떡하니 앉아 일어서지도 않으니 노친네가 아주 쌍욕을 퍼붓는다.
"어디가 아파?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데?! 어린 게 비키지도 않고 말이야!! 아주 XX XXX XXXX!!"
엄마가 차분한 소리로 애가 아파서 앉았다-하니 동네사람들 여기 좀 보란 듯이 쇼를 했다.
비참했는지 뭔지 모를 눈물이 났다.
밀물에 휩쓸려 나가떨어진 건 나였다.
보기에 멀쩡하다니.. 피라도 철철 흘리고 있어야 했나
엄마가 그렇게 흥분해서 싸우는 것도 슬펐다.
(그래서 택시 타자니까..)
모른 척하는 사회가 싫다.
방관자도 싫다.
그래서 희한하게도 방관자의 삶을 산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손길을 내주고 아는 것을 내주었지만 이용당하기 십상이란다.
발전만 하는 이 사회를 보고 있자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성싶다.
사랑만 하고 살기에 너무나 순진한 소리 아닌가.
어르신에게 친절하지 못한 키오스크가 불편하다.
현금 없는 버스와 영어로 범벅된 메뉴판, 한글로 쓰고 영어단어로 읽어야 하는 광고가 그렇다.
얼마만큼의 글이라는 걸 쓰면서 되도록이면 서양단어를 쓰지 않으려 가급적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 ㅜㅜ
문명이 발달하자 택시에서도 친절도를 별점으로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 발달한 문명이라면 나중엔 인간의 머리 위에도 별을 새겨주고 싶다.
쓰레기 1급
부조리 1급
사회악 1급..
생태계 볼 만하겠다.
매일 아침 6시면 눈을 뜬다.
주어진 일을 하고 뉴스를 켜고 식사를 한다.
어찌어찌 세상 돌아가는 걸 조금이나마 귓등으로 듣고 곁눈질로 본다.
드라마틱하다.
내가 바르는 화장품도 이 정도 효과였으면 난 그 회사 모델됐지 싶다.
세상은 좀 더 자극적으로 돌아간다.
멋지고 흉하고 낯설고 이렇게까지나 싶을 정도로 좋게도 혹은 나쁘게도 돌아간다.
돌고 돌아 지구인가.
모든 것이 친절하지 못한 지구는 온난화의 실질적 피해자인 북극곰보다 사실 사건 사고로 죽는 인간이 더 많진 않은가에 대해 의문.
내가 사는 이곳은 별 몇 개를 줘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