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차하지만 쓸모 있는 변명.
너가 그랬다. 나더러.
<휴지 공주>라고!
안다. 난 휴지를 엄청 많이 쓴다.
우리 강산 푸르렀으면 좋겠지만 난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생활비를 좀 아껴보고자 갑 티슈의 질을 좀 낮춰보자는 너의 의견이 있었다.
라섹 수술을 하고 오픈 점막까지 겸한 나는 인공눈물을 달고 산다.
보드라운 휴지가 아니면 이내 눈두덩은 탈이 나고야 마는 아토피까지 겸비했다.
'왜 휴지가 나보다 우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내 인생 내가 털어야 너도 인정을 하는 바,
때는 병판정을 받고 가족모임에 잘 빠지고 그렇게
아빠를 보낸 후,
무뚝뚝한 오빠가 딱 한마디 말한 게 있다.
"가족들 모일 때 이제 빠지지 마라."
그래. 갔다.
조카의 방에 짐을 풀고 밥을 먹기 전 역시나 혼자 휴지를 깔고 알코올 스왑을 꺼내 손을 닦고 혈당을 체크했다. 평소와 다른 메뉴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럴 땐 식 후에 먹은 탄수화물을 계산해 주사를 맞는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평소에 모든 걸 아껴 쓰라는 엄마의 잔소리와 나름 말 잘 듣는 나는 그래 오빠집이니까 ‘이 놈의 휴지’ 함부로 버리지 않고 두 번 울궈 먹자!
혈당체크를 한 휴지를 구석탱이에 두고 인슐린을 맞을 때에도 써먹어야지 하는 나답지 않은 절약정신이었다.
타이밍도 엉망이어라…
고이 펴 놓은 휴지 위에는 혈당을 체크한 결과물들이 누워있다.
란셋과 스트립지가 신기했는지 어린 조카가 그걸 살펴보고 있었나 보다.
용케도 캐치했지, 오빠가 부른다.
"너 저거 안 버리니까 **이가 만지잖아"
치워!라고 말해라 차라리.
조선에 없는 딸내미인 거 아는데 나도 한 때
네 똥강아지 아니었냐?
남의 속도 모르고 참 서럽게 하더라.
엄마의 따라다니는 휴지 아껴 써라!
못내 서운한 오빠의 한마디!
그리고 휴지의 레벨을 낮추자는 그 말!
3단 콤보가 나를 미치고 팔짝 뛰게 했다.
이 정도 사연이면 되겠니?
나 휴지 정도는 펑펑 쓰면서 살면 안 될까?
왜 다들 나만 보면 휴지타령이야!
내가 뭘 그리 큰걸 바랐다고!!
이럴 거면 나무로 태어나라 하지 그랬어!!
자려고 누우면 눈에서 물이 좔좔 흐른다.
몰랐는데 비염이랜다.
천상 휴지를 끼고 살 팔자인 거다.
지금은 질 좋고 보드라운 휴지를 쓰고 있다.
- 나중에 알았는데 우리 언닌 알고 보니 '휴지 여왕'이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