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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 문드러질 초코케익

by vakejun


첫 입원, 그리고 퇴원.

내가 외친 건

"예뻐질 거야!"


못난 얼굴도 아닌데 '병' 하나로 초라하고

구차해졌다.


화장실 한편에 숨어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을 맞았다.

잘못한 게 없는데 숨는 이유를 못 찾겠더라.

당당하진 않더라도 피하진 말자.


예뻐질 거야!

아무도 주사 맞는 날 보고 수군대지 못하도록.


4mm 니들이 꽂힌 내 팔이나 옆구리 피하지방의

펜주사기 보다 내 스타일에 먼저 꽂히도록.


미용실부터 갔다.

아빠가 넌 머리염색 같은 건 하지 말랬는데..

밝은 갈색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긴 머리를 싹둑 잘라냈다.

후회했다.


난 내가 변신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포켓몬이 부러웠다.

나도 진화하면 강해질 것 같아서.


머리는 대실패 했고 1년 넘게 거울을 보지도 않았으며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다.




그날,

머리를 자르러 가던 길, 카페 하나가 있었다.

입원 내, 모든 간식을 통제당하고

제한된 끼니 외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좋아하지도 않던 '초코케익'이 왜 그렇게 먹고 싶던지.


카페, 몇 안 되는 계단이었는데..

용기가 안 났다.

식사 이외의 간식에 맞는 첫 주사는

호사스럽고 두렵고 주저할 수밖에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놈의 썩어 문드러질 초코케익!


유혹은 창피나 두려움, 복잡한 내 감정을 이겼다.


달콤하다.

생크림을 더 좋아하는데..

달디달다.


눈물 젖은 빵은 이런 걸 뜻했나.

못 먹는 게 짜증 나는 게 아니다.

이런 거 하나에도 고민과 걱정을 하는 게 짜증이 나는 거였다.


치킨을 참 좋아했는데..

옥수수를 참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것들은 다 배신을 했다.

치솟는 혈당이 그랬다.

너무나 먹고 싶고 주사는 맞기 싫고

살은 더더욱 찌기 싫고 운동도 귀찮다.

얄팍한 수를 쓴다.

치킨을 씹고 뱉었다.

인간이 할 짓이 못 됐다.


맥모닝을 먹고 주변 산책로를 두 시간 걸었다.

배달음식을 먹으면 빡센 요가로 땀을 냈다.


밥 70g, 간식으로 쿠키 3개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량만큼이나 규칙적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관리는 소홀해졌고

외식은 먹고 나면 내 돈 주고 밀려오는 죄책감을 사야만 했다.

3개월에 한 번씩 가는 정기검진도 한 달 전부터만 타이트하게 관리했다.


그렇게 12년을 보냈다.


작년 봄, 당화혈색소 최악의 수치를 찍었다.

크게 웃었다.

나도 놀랐다.


이제 조금만 관리해도 다음번 결과는 이거보단 낫겠네?!!


보장된 결과에 터무니없게도 웃음이 났다.


숫자 하나에 울고 웃던 지난 10여 년의 암울이 머리 위를 스쳐갔다.

크게 상심할 줄 알았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고

내가 왜 긍정적인 결론을 낸 건지는 아무리 뒤져봐도 정확하게 꼬집어내진 못했다.

상관없다.

그날의 난 초코케익보다 더 달콤한 무언갈 발견한 것임엔 틀림없다.


보상으로 오늘은 좋아하는 생크림케익을 먹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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