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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숭-1

by vakejun


지리산 일대에 곰이 나온다는 뉴스를 봤다.

곰을 맞닥뜨렸을 때는 죽은 척하는 게 상책이라고 한다.

내 손에 쑥과 마늘이 없다면 그래야 하지 싶다.

단, 그 곰은 암컷이어야 할 터..

단군은 구할 수 있고?


지리산 말고도 내 가까이엔 몇몇 짐승이 있는데

아, 입에 촥촥 안 붙으니 늘 하던 대로 '짐숭'이라고 표현하겠다.


'너'를 간결하게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내 삶을 목격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걸 케어해 줬던

내 은인이자 인생 절반의 곁을 내 준 고집 센 짐숭.


얼굴이 길어 슬픈 짐숭.

처음 네 입으로 '난 말이야.'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눈치채지 못? 하진 않았겠다. 미안.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에 널 만나 이리도 멀리, 그리고 오래..

(올림픽 같구나)


참으로 견고하다.


사람들은 죽을 때 개인 메일이나 SNS, 카톡 등을 폭파시켜 줄 친구 한 명쯤은 있다고 하는데..

난 아마 너를 폭파시켜야 하지 않을까?

좀 잔인한 처사지만 그만큼 내 모든 걸 알고 보고 느낀 너로선 영광이다.


널 '말'로 설명할 수 없어.

세월도 네 얼굴만큼이나 길었지만 고마운 걸로 따지자면, 행복했던 시간과 어지러운 내 세상을

함께 해 준 널 무어라 정의하겠니.

그 언젠가 스무 살 언저리의 나에게 너는 그 가사대로 그러했다.


내가 너를 만난 건 행운이었어-


너도 그러했길. 그러하길.


더 많은 정보로 너에 관한 썰을 풀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조금은 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늘 네가 말하는 '내 사회적 지위와 체면, 어?'를 감안하여..

그 지위와 체면을 위해 '쿠마몬' 캐릭터의 가면을 사달라고 했던 넌,

아이 같은 면을 가졌더구나.


지리하게 많이도 싸우고 화해를 반복했지만 이 만큼 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존경해.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 세상 모든 긴 것들 중에서 단연 네가 최고야!




*참고로, 내가 먼저 죽으면 네 여동생이 널 삽으로 후려쳐 순장 시켜준 댔다.

*고통스럽지 않게 한방에 처리해 달라고 일러뒀다. 고맙단 말은 넣어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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