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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안 좋을 땐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

by vakejun


토요일 아침엔 브런치 카페로 향한다.

나만 아는 숨은 고수의 힐링 스팟이다.

4년째다.

사장님은 무심한 듯 부담스럽지 않게 서비스를 건네주시고 사라지신다.

조용히 음식을 음미하며 그날의 기운을 얻어간다.


내가 살던 곳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

지겹게 가는가 싶었지만 중요한 건 그곳의 음식은 단 한 번도 질리지 않았다.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계약을 만기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끼고 정을 줬던, 내가 머물던 곳을 내어주어야 하는 심정은 허망하다 못해 서글펐다.


하필이면 아빠기일에 연락을 받아서였나

하루만 늦춰서 연락 주시지..


지친 내 심신과 안식을 취했던 그 장소를 이제는 돌려주어야 한다.

뭐라 설명하기 답답한 상실감..


매일을 쓸고 닦고 광을 내더니

그래, 결국엔 이 꼴이 날 거면서 내 속 편하자고 그렇게 깔끔을 떨어댔다.

꼴좋다. 늙어서 골병든다더니 남 좋은 일만 했나 싶다.


이렇게 애쓴 건 복으로 되돌아와줘요 제발.


집을 알아봤다. 더욱 난감했다.

보는 족족 맘에 들지 않았고 갑갑해져 오는 기분에 스트레스만 증폭했다.


"집만 네가 알아봐! 나머진 내가 싹 다 할게!"



"저기 집 보러 갈까?"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주 가던 브런치 카페였다

"보는 데 돈 드는 거 아니잖아."

타프나드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나의 소울푸드다.

그날은 모든 게 잘 풀릴 거라는 마법소스라도 묻어있었나.


이동하는 차 안, 머리를 못 가눌 정도로 잠에 취했다.

이사를 했다.

삶의 터전이 완전히 바뀐 거다.

좋은 곳에 그 기운 물려주고 좋은 기운이 머물다 간 자리로 새로운 안식처를 마련했다.


탁 트인 하늘이 보기 좋고

그 아래 반짝이는 빌딩 불빛이 화려하고

조그만히 멀리 보이는 한강으로

쏟아지듯 부서지는 햇빛의 조각들이 눈부셨다.

통유리창으로 내려다 보이는 바깥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본다.

문득 깨달았다.


전처럼 아빠 생각이 많이 나지 않는다.


예전보다 조금은 큰 평수에 더 신이 나

상쾌한 마음으로 아침, 저녁 광나게 닦기 시작했다.

또 결벽이 도졌다.

어깨에 무리가 왔다.

그만큼 대충 살자-라고 외쳤지만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담 역시나 신나게 병원을 다녀보자.

한의원에 다닌 지 1년이 지나고 요가로 재활을 했다.

오른쪽 어깨를 내주고 '도비'의 생활을 청산했다.


계란 노른자보다 짙은 주황색 해가 빌딩 안으로 숨는다. 찰나를 사진으로 남긴다.

지난해의 일몰과 비교하는 것 또한 신나는 일이다.


토요일.

'타프나드'를 먹으러 간다.

걸어서 갈 수 있다.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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