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정리
잘 아물어 딱지 하나 없는 상처들은 곱게 날려 보낸다.
곪아 터져 흉이 져버린 것들은 가슴속에 머릿속에 고이 숨겨놓는다.
꺼내 보고 곱씹어보고 그날의 상흔을 더듬어본다.
얼마나 아팠는지 쓰라렸는지 수 없이 되새김질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기억을 들춰보는 버릇은
쓰잘데기 없고 의미 없는 루틴에 버겁기만 하다.
커다란 글씨로 타이틀을 새겨놓은 그날의 쓰린 기억을 엑스표 하며 지운다.
쓰레기통 하나가 있다.
'버리기 전' 폴더도 하나 있다.
그 옛날 편집의 신이었던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
잘 정리된 바탕화면 같은 그곳,
쓰레기통으로 가기 직 전, 버리기 전 폴더의
'버려도 될 만한.memory'들을 몇 번 훑고서
과감하게 버린다.
모든 게 아까웠던 예전.
미련이다.
좋든 싫든 그 '언젠가'를 대비해 쟁여두기만을 반복했던.
좀 더 과감해지기로 한다.
정리하고 버린다.
남겨놓고 싶지 않다.
'간직'이라는 이름이 거창해서,
남겨진 '흔적'이 싫어서
'언젠가' 들여다봤을 때 치미는 스멀거림이 싫어서 미리미리 손쓰는 내가 부지런하고 깐깐하다.
날을 잡고 상부장, 하부장, 모든 서랍을 뒤져 버릴 것을 추려낸다.
물건 하나하나에 담겼던 기억도 추억도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하며 쓰레기통이나 재활용품으로 던져진다.
정리가 좋다.
나쁜 것은 모두 사라지고 좋은 것만 남는다.
깔끔하고 보기 좋다.
내 기억에는 무엇들이 남아있고 얼마나 좋은 쓰임새를 가지고 있나..
10년 이상을 겪어야 진짜 '나'를 아는 이들은 내가 참 웃긴 또라이라고 하던데..
10년 정도 글을 쓰면 보는 족족 웃게 될까?
유쾌한 게 좋다.
우울도 이 정도 연식이면 오래 달렸다.
담당의는 '아직'이라고 했지만.. 네, 함께 해 볼게요.
공생도 나쁘지 않다.
좋아하는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밖으로 나가라고 하시던데.
좋아하는 시간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장소에 짱 박혀 지금 이러고 있어요.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10년 후 이 기억이 나면 난 잘했다고 내게 칭찬해 줄 겁니다.
엄청 근사하게요.